발레 호두까기 인형 Op.71 Щелкунчик Тhe Nutcracker
표트르 차이콥스키 Пётр Ильич Чайковский (1840-1893) 러시아 작곡가
✔️원작 : 호프만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을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가 번역한 것
✔️안무 : 마리우스 프티파, 레프 이바노프
✔️작곡 : 1892년
✔️초연 : 1892년 12월 6(18)일, 마린스키 극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초연 이후 안무 버전:
레프 이바노프, 알렉산드르 고르스키, 표도르 로푸호프, 바실리 바이노넨
유리 그리고로비치, 루돌프 누레예프, 존 그랑코, 존 노이마이어, 롤랑 프티
조지 발란신, 피터 라이트, 모리스 베자르, 미하일 쉐먀킨
요즘 한국의 겨울은 예전에 내가 살던 한국의 겨울이 아닌 유학 시절 내가 살았던 모스크바의 겨울을 보는 듯싶다. 쌩쌩 차거운 바람에 코가 빨개지고 코끝은 찡하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빨갛게 곱아가며 얼어가고... 우리나라 겨울이 이렇게 추웠던가?
겨울은 왠지 쓸쓸하다. 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하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은 마법을 부릴 줄 안다. 우리에게 따뜻한 동화의 나라를 선물할 줄 아는 유일한 계절이 겨울이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날씨로 인해 더 따스함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등 겨울을 모티브로 한 동화들을 보면 참 따뜻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다른 동화들에 비해 더 따스함을 느끼는 것 같다.
게다가 연말이면 전 세계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꼭 보는 주요 공연 레퍼토리가 된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 또한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을 모티브로 작곡한 곡이다.
호프만은 친구의 아이들을 위해 <호두까기 인형>을 썼다. 그래서 실제 친구의 아이들 이름인 마리와 프리츠라는 이름을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 처음엔 1816년, <어린이 동화(Kinder-Märchen)>에 담아 출간했고, 이후 1819년에 그의 단편집 <세라피온 형제들(Die Serapions-Brüder)>에 다시 실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본래 제목인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Nussknacker und Mausekönig)>보다, 이를 모티브로 한 표트르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щелкунчик)>이 유명해지면서, 호프만이 지은 원제목보다 차이콥스키가 쓴 제목인 '호두까기 인형'이 더 많이 알려졌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읽는 책의 제목으로도 <호두까기 인형>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호프만 <호두까기 인형> 줄거리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은 어느 크리스마스, 마리라는 소녀가 대부인 드로셀마이어 아저씨에게서 호두까기 인형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는데 오빠 프리츠로 인해 망가진다. 그래서 그녀는 망가진 인형을 정성껏 돌봐 준다. 모두가 잠든 새벽이 되자 시계 종소리가 울리고 갑자기 생쥐떼가 나타나서 마리를 공격한다. 그래서 호두까기 인형과 장난감들은 생쥐떼와 전투를 한다.
아침에 일어난 마리는 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 드로셀마이어 아저씨는 호두까기 인형에 대한 전설을 들려준다. 그 전설은 옛날 어느 왕이 파티를 하자 생쥐들이 나타나 거기에 있던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고 이것을 본 왕은 그 생쥐들을 모두 없애버렸다고 했다. 이 사실에 화가 치민 생쥐 여왕은 공주의 얼굴을 깨물어 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하게 만들어 버리고 크라카툭 호두를 먹어야만 저주가 풀리도록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한 청년이 공주에게 그 호두를 깨물어 건네주었고 공주는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저주는 생쥐 여왕에게 옮겨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본 생쥐 왕은 공주에게 호두를 준 청년을 못생긴 호두까기 인형으로 만들어 버렸고 진심으로 사랑을 받았을 때 저주가 풀리도록 만들었다.
며칠 후 호두까기 인형은 마리가 준 칼로 머리가 7개인 생쥐 왕을 물리치고 마리를 인형의 나라로 초대했다. 그곳에서 호두까기 인형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마리는 자신도 모르게 호두까기 인형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마리는 인형의 나라가 아닌 자신의 방에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순간 드로셀마이어 아저씨가 자신의 조카와 함께 마리를 찾아왔다. 조카는 마리에게 그가 호두까기 인형이었고 그녀의 사랑이 자신을 마법에서 풀어주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은 인형 나라의 왕자인데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 인형의 나라에서 살자고 청혼을 했다. 마리는 흔쾌히 왕자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인형의 나라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이게 호프만이 쓴 동화의 줄거리다. 하지만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호프만의 동화를 전체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대(大) 뒤마)가 각색한 것에 기초해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수석 안무가인 마리우스 프티파가 발레로 구성을 하였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그 후 차석 안무가 이바노프가 수정한 버전이다.
*극장 백과사전에는 실수로 번역가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소(小) 뒤마)로 되어 있다.
차이콥스키가 50세가 되던 1890년, 그는 신작 발레를 위촉받았다. 그에게 발레를 위촉한 사람은 프세볼로즈스키(Иван А. Всеволожский, 1835-1909)는 마린스키 극장 감독관을 역임하며 러시아 발레 문화를 개혁하는데 큰 업적을 세운 인물이다. 오래전부터 차이콥스키와 막역한 사이었던 그는 1888년 발레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작곡도 위촉하였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호두까기 인형>의 위촉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너무 많은 곡의 작곡 위촉에 시달렸고, 과거에 작곡했던 발레 작품들인 <백조의 호수>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그리 좋지 않은 반응에 의해 자신은 발레곡에서 필요로 하는 환상적인 표현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발레곡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한 오랜 정신적이자 물질적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고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그를 너무 힘들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한 마디로 차이콥스키는 너무 힘든 상태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막상 1891년 1월 이 곡을 쓰기 시작하자 바쁜 일정 속에서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대신 이듬해 관현악 편성 작업을 하던 중 또 받은 신작 의뢰를 받은 차이콥스키는 신작을 따로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발레 전곡 가운데 8곡을 골라 관현악 모음곡으로 정리했고 이 모음곡이 초연의 대성공과 함께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892년 12월에 초연된 발레의 경우 음악은 그 전의 차이콥스키에게 달려 있었던 ‘지루한’ 이란 수식어를 깨트리는 극찬을 받았지만 공연 자체는 준비 부족으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진가를 알아보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사실 모음곡만 들어도 잘 짜여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발레를 보는 것이 더 동화 속에 빠져든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차이콥스키의 발레는 호프만의 동화를 모티브로 사용했기 때문에 내용이 다소 틀리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 줄거리
클라라와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한참을 기뻐한 뒤 잠이 든다. 이때 생쥐 왕이 부하를 데리고 습격을 한다. 호두까기 인형이 병사 인형들과 싸우지만 불리해지는 찰나 클라라가 던진 슬리퍼를 맞고 쓰러지는 생쥐 왕을 보고 생쥐들이 모두 도망간다.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 인형은 클라라에게 생명을 구해준 보답으로 과자나라에 초대하고 그곳에서 여러 요정들과 함께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막이 내려간다.
여기서 차이콥스키는 과자나라를 표현하고자 여러 종류의 요정들을 만들었는데 자신이 생각하던 중국을 이미지화시킨 ‘중국 춤(Dance Chinoise)’, ‘러시아 춤(Dance Russe Trepak)’ 등이 있다. 이런 춤을 통해 세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고 그 후 나오는 ‘꽃의 왈츠(Valse des Fleurs)’를 통해 ‘역시 차이콥스키 야!’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이 ‘꽃의 왈츠’는 24명의 군무와 서주를 지닌 확장된 왈츠, 거기다 하프의 카덴차풍 연주를 가미해서 성대하면서도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 주어 차이콥스키의 왈츠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한 걸작이라는 칭찬을 듣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 여러 버전을 통해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클라라, 마리라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에서 불려지는 최종 버전은 ‘마샤(Masha)’ 다.
이것은 1914년 세계 1차 대전 이후 작품의 주인공 이름을 러시아 이름으로 바뀌는 작업이 한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빠인 프리츠는 그대로 남았는데 이유인즉 프리츠는 악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차이콥스키의 발레 작품 중 가장 큰 호응을 받아 성공한? <호두까기 인형>도 단점을 가지고 있어 계속 언급되고 있다.
첫째로, 가장 큰 단점은 1막과 2막 사이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발레 줄거리에서 보이듯 2막은 여러 춤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춤들은 보기에는 좋지만 스토리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둘째로, 주인공 클라라가 어린이기 때문에 1막에서는 뭔가 춤도 추고 움직임이 있지만 2막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극의 핵심인 그랑 파드 되(Grand pas de duex)도 추지 않고 요정들의 춤을 구경한 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드로셀마이어 역할은 그냥 이상한 마법사 같은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다.
위의 언급된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 바이노넨 버전(키로프 발레단)이다.
우선, 클라라를 소녀가 아닌 어른으로 설정하여 1-2막, 모든 곳에서 춤을 추게 되었다. 그리고 드로셀마이어는 클라라의 대부라는 설정으로 개연성을 높였다.
볼쇼이도 개연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막에 나오는 인형들을 1막의 전투에서 함께 싸움을 할 수 있도록 등장시켰다.
두 버전은 엔딩이 살짝 다른데 바이노넨은 과자의 나라로, 볼쇼이는 크리스마스 트리 속의 크리스마스 랜드로 떠나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후에도 많은 안무가들이 자신들만의 버전을 만들어 매 년 즐거운 동화를 보여주고 있다.
1991년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은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미하일 쉐먀킨을 만나게 된 것이다.
러시아 출신 화가인 미하일 쉐먀킨(Mihail Chemiakin, 1943- )은 1971년 반체제 운동으로 구 소련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한다. 그래서 프랑스를 거쳐 1981년 미국으로 망명했고 그 후 구 소련의 붕괴와 동시에 러시아로 귀국하였다.
그의 작품은 몽환적이면서도 기괴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는데 연극적이고도 우화적인 면이 많다고 한다. 그런 그가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의 아트 디렉터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마린스키 극장은 환영의 박수와 비난의 박수를 한꺼번에 받았다.
결과적으로는 엄청나게 화려한 무대와 의상을 만들었지만 ‘그’ 만이 가지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면이 많이 담겼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진정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더욱더 강해지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
이 모습을 보면 차이콥스키가 자신의 초연을 보고 했던 생각인 “너무 화려해!”를 그대로 보여준 듯싶다.
한국에서는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이 연말마다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하고 있다.
유니버설을 프티파의 마린스키 극장 버전이고 국립발레단은 그리가로비치의 볼쇼이 극장 버전이다.
사실 <호두까기 인형>의 줄거리를 보면 차이콥스키는 유치하다는 자신의 첫 관점이 스르륵 녹았을 수도 있다. 자신이 처해있는 모습이 호두까기 인형과도 비슷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절망적인 자신의 현실에서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작품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원동력은 이 작품을 작곡하면서 차이콥스키 자신 또한 동화 속 세계에 있는 치유의 손길을 느꼈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본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의 가장 로맨틱한 날인 크리스마스.
이 날 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사랑스럽고 달콤한 희망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 시작하는 다음 해를 힘차게 준비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굳게 믿는다.
특히 이번 겨울은... 2020년 한 해 동안 일상과는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따스한 기운이 넘쳐 나길 희망해 본다.
*러시아어는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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