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체르 소나타 Крейцервая Соната
레프 톨스토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톨스토이가 1890년에 쓴 중편소설이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가 중요한 모티브로 사영되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스캔들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Они играли Крейцерову сонату Бетховена. Знаете ли вы первое престо? Знаете?!"
“그들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 를 연주했어요. 첫 프레스토를 아시나요? 아시냐고요?!”
- 레프 톨스토이 중편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 中
등장인물
주인공 - *포즈드늬쉐프(포즈드니셰프, Позднышев)
영주, 중년 남성, 사랑과 결혼에 큰 실망을 가진 사람
*러시아어를 그대로 읽으면 포즈드늬쉐프인데 한글 번역본에는 '포즈드니셰프'라고도 표기가 되어 있어서 둘 다 표기했음
그 외 인물
포즈드늬쉐프 부인
주인공의 부인, 젊은 여자, 남편의 질투의 희생양이 되었다.
트루하쳅스키
음악가, 바이올리니스트, 젊고 매력적인 남자로 포즈드늬쉐프 부인을 매혹시킨다.
화자
포즈드늬쉐프와 우연히 동승한 사람으로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에게 한다.
줄거리 (720 단어)
기차 안 승객들은 지루해하고 있다. 그러던 찰나 여자, 결혼, 사랑은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 등에 대해 이야기 꽃이 피었다. 한 부인은 예전에는 아무나 걸리는 사람과 결혼해서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았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지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인간은 동물같이 교배 관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늙은 상인은 부인은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감정 따윈 그 누구도 관심이 없고 결혼 생활을 어떻게 하든 결국 익숙해지고 그 생활에 맞춰진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있을 때 갑자기 혼자 타고 있던 과묵한 신사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정한 사랑이 가진 뜻이 뭐죠?’ 이 물음에 아무도 답을 할 수 없었고 그는 ‘진정한 사랑은 소설에만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신사와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고 과묵한 신사는 ‘내가 아내를 죽인, 그 포즈드늬쉐프입니다.’라고 자신의 존재를 밝혔다. 신사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그날 밤, 포즈드늬쉐프는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동행자에게 이야기했다.
포즈드늬쉐프는 영지를 가지고 있는 지주였고 *대학을 졸업했고 결혼 전까지는 상당히 문란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상당히 도덕적인 사람이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방탕함은 건강을 위한 적정선에서 이루어지며 자신을 속박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의 속임수는 어떻게 해서든 피해 갔다.
이런 식의 삶을 30세까지 유지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결혼을 하고 세상에서 제일 고귀하고 정결한 가정을 꾸리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그는 파산한 지주의 매력적인 딸을 만났다. 그녀는 그의 이상형에 부합했고 서둘러 그녀에게 청혼했다.
포즈드늬쉐프는 대부분의 자신의 친구들과는 달리 ‘결혼 후 일부일처제’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진정한 천사라 믿었고 이 생각은 그를 위로해주었다.
결혼 전 신부와의 소통이 상당히 힘들었고 이것은 거의 헛수고에 가까웠다. 정서적 친밀함을 느끼지 못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되는지 몰랐고 둘 사이의 거리감은 아파트 천장, 침실, 화장실, 욕실 가운 같은 결혼 전 자질 구래 한 일로 가득 차 버렸다.
*кандидат университета : 재정 러시아 시절인 1803년부터 1884년까지 있었던 교육 등급?으로 3등급인 '학사 석사 박사 кандидат — магистр — доктор'중 가장 낮은 등급인 '학사'에 해당된다.
축복받은 신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신혼부부는 신혼생활이 주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결혼식 며칠 후 포즈드늬쉐프는 아내가 심심해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안아주었지만 부인은 울기만 했다. 그녀는 왜 자신이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지 설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냉정함과 증오, 적대감이 나타났다. 포즈드늬쉐프는 너무 놀랐다. 그는 사랑이란 이렇게 끔찍한 감정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얼마 안 가 아내가 자기에게 가지고 있는 적대감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것을 깨닫고 슬퍼했다. 그제서야 포즈드늬쉐프는 ‘결혼이란 불행한 것뿐만이 아닌, 뭔가 굉장히 힘든 것’이란 것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부부는 점점 더 자주 싸웠다. 8년의 결혼생활 동안 그들 사이에는 다섯 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아이들은 그들의 관계를 좋게 만들지 못했다. 반대로 자녀들이 생기자 그들은 서로에게서 더 멀어졌다. 포즈드늬쉐프는 ‘아이들은 고통일 뿐 더 이상의 것이 아니다’라 여겼고 그들에 대한 사랑은 그냥 이기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포즈늬쉐프의 젊은 부인은 아이들 문제로 바빴고 남편에게는 완전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최악인 것은 부부는 아이들의 무기로 삼아 서로에게 겨누었다. 그들은 각각 애정하는 아이가 있었고 아이들의 정서는 고려치도 않고 어른들의 무자비한 게임을 위해 아이들을 잔인하게 이용했다.
몇 년 후, 그들은 날씨, 아이들 질병, 일상적인 문제 해결 정도의 의사소통만 하게 되었다. 포즈드늬쉐프 부부는 서로를 증오하여 상대방을 독살하고 있지만 그것을 보지 않도록 노력하는, 하나의 사슬로 묶여있는 죄수들처럼 보였다.
부인은 5명의 아이를 낳은 후 건강이 안 좋아졌고 의사는 더 이상 출산을 하지 말라고 했다. 젊은 부인은 너무 좋아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삶이 더 힘들어졌다. 의사의 조언은 부인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눈에 띄게 예뻐졌고 밝아졌으며 다른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이상 아이들이 아픈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피아노 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포즈드늬쉐프 부인은 사랑을 위해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질투와 분노가 가득한 남편과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력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트루하쳅스키가 그들의 집에 왔을 때, 그녀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필요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포즈드늬쉐프는 그의 아내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질투심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음악회에서 포즈드늬쉐프 아내와 트루하쳅스키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함께 연주했다. 음악은 포즈드늬쉐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것은 마치 무엇인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징조 같았다.
이후 포즈드늬쉐프는 일때문에 집을 비워야 했다. 하지만 부인과 음악가의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견딜 수 없던 그는 집으로 돌아왔고 연인을 보고 말았다. 처음에는 트루하쳅스키에게 덤볐는데 그는 급하게 도망쳐버렸다. 포즈드늬쉐프는 그를 쫓아가려다 문득 ‘맨발로 아내의 연인을 쫓아가는 건 너무 우스꽝스러울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대신 질투에 눈이 멀어 단검으로 자신의 아내를 찔렀다.
죽음 앞에서도 그녀의 얼굴엔 ‘그를 경멸하는 증오’가 있었고 마지막 소원으로 아이들은 포즈드늬쉐프가 아닌, 그녀의 여동생이 키워야 된다고 말했다. 포즈드늬쉐프는 관에 누워있는 자신의 부인을 보았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한 일은 절대, 그 어디도, 그 무엇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깨달았다.
포즈드늬쉐프는 재판을 기다리는 11개월 동안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 후 무죄로 풀려 났다. 하지만 자신이 한 일을 용서할 수 없었다.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클래식 음악에서 문학 작품을 사용하는 예는 참 많다.
특히 오페라와 발레는 문학 작품을 베이스로 사용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여러 나라의 멋진 문학 작품을 음악과 함께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문학 작품 속에서 클래식 음악을 찾아낼 수도 있는데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바로 이런 작품 중 하나이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러시아의 사상가, 소설가, 극작가, 세계문학 최대의 리얼리즘 작가로 전 세계 모두에게 꼭 읽어야 되는 작품을 많이 남긴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가 1890년 집필한 중편소설이다.
톨스토이는 유난히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베토벤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중편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이 소설은 1890년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노골적인 내용으로 인해 금지된 작품으로 주인공 포즈드니셰프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얻은 여러 가지 생각 중 사랑과 결혼에 대해 혼자 이야기하는 독백 스타일의 글이다. 포즈드니셰프는 자신의 아내와 트루하쳅스키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함께 연주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를 듣고 두 사람이 자신 몰래 불륜 관계라 단정 지으며 아내를 살해했다는 내용이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참 황당했다.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필자 자신도 자주 연주하는 곡이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고 기대를 하고 읽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부분보다 음악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정말 실망스러웠다.
보통 작가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것을 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상상의 세계를 구체화해서 종이에 옮기는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팩트(fact)가 아닌 걸 쓰게 된다. 그러기에 오페라를 위해 사용된 문학 작품을 읽는 것과 달리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가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보면 음악가로서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묘사가 있기에 독서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피아노 소리를 점검하기 위해 ‘라’를 눌러서 피치카토를 해보고 악보를 잘 고정시켰습니다.'라는 문장을 보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피아노 소리 점검을 위해 ‘라’를 눌러서 피치카토를 해보았다고 쓰는 것일까? 이렇게 쓰면 독자들은 당연히 정확한 사실을 책에 썼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 연주 전 피아노 소릴 점검하기 위해 ‘라’를 누른다는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언급했을까?
그렇다면 보통의 연주회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모든 연주회에서 ‘피아노 소리 점검’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조율(tuning)’이 아닐까 싶다.
연주회 전 전문 조율사가 피아노를 조율하고 악기 상태를 확인하다. 이때 많은 연주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주문하기도 한다. 만약 피아노 독주가 아닌 다른 악기의 경우 보통 피아노의 반주가 함께 이루어진다. 이때 독주 악기를 위한 조율을 위해 하는 것 중 하나가 ‘라’를 눌러서 피치카토를 한다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묘사한 이 부분은 정확히 말해 바이올린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바이올린의 4개의 현을 정확하게 튜닝하기 위해서 항상 피아노는 ‘라’를 친다. 그러면 바이올리니스트들은 그 ‘라’에 맞춰 자신의 ‘라’의 음정을 가진 A선을 맞춘다. 그리고 이 A선을 토대로 나머지 세 개의 선도 튜닝을 하게 된다. 그 후 바이올린 조율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위해 ‘피치카토’를 하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한글로 번역된 것을 읽은 부분이어서 톨스토이가 ‘조율’에 대해 잘못 설명한 줄 알고 발끈 한 글이다. 하지만 보라색으로 표시한 곳 중 ‘피아노 소리를 점검하기 위해’라는 문장은 원본에는 없다. 적어도 내가 읽은 원본에는 없다. 원본에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식적으로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라를 쳤고 바이올린의 피치카토, 악보를 놓았습니다. 그 후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청중을 둘러보고 서로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말한 조율은 바이올린 조율과 연주자 둘 사이의 조율인 것이다.
그리고 위의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엄청 많은 ‘일반인’들에게서 듣는 질문을 보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서로 눈빛 교환을 하고 사인을 주고받는 것 때문에 질투하는 남편의 말이지만, 비단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 필자 또한 종종 듣는 말이기도 하다.
연주라는 것은 한 사람만이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독주를 할 때도 있지만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와 같이 여러 명이 함께 연주해야 되는 경우에는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의 소위 ‘궁합’이 얼마나 좋으냐, 에 따라 연주의 결과가 좌지우지된다.
보통의 연주자들은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좋게 말하면 한 성격 한다 이야기할 수 있고 솔직하게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융합하여 컬래버레이션을 ‘제대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호흡을 가져야지 만 가능한 일이다.
작가, 작곡가, 화가와 같이 제1 창조를 하는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고요함과 적막함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그려낸다. 하지만 연주자, 연기자와 같이 제1 창조자가 만들어낸 작품을 가지고 또다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이기적인 그들에게 있어 다른 누군가와 자신의 의견을 나누고 타협점을 찾는 행동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빛만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무대에서는 굉장히 중요시 여겨진다. 또한 무대란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끝날 일 조차도 어느 순간 믿을 수 없게 황당한 일로 바뀔 수 있고 전적으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의 육감 하나로 버텨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 무대를 나누는 그 누구와의 호흡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연주자의 모습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한국에 와서 알게 되었다.
남녀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가 연주하기 전 서로 시작을 알리는 눈빛을 교환하면 극히 일부분일 수 있지만 그래도 몇몇 청중들은 ‘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길래 저런 눈빛 교환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 두 사람은 당장 연주할 곡에 대해 생각하며 서로의 생각이 공감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런 눈빛 교환이 가능한 것이다.
연습을 하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느 부분이 매끄럽지 못 한지, 어떻게 연주해야 더욱 편안하면서도 청중이 듣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연주가 될지, 이것만이 무대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이다!
긴긴 겨울 러시아가 추위를 견디는 방법 중 하나가 독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따뜻한 홍차에 레몬 한 조각을 넣고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며 춥고도 6개월 이상 이어지는 긴 겨울을 이겨낸다.
오후 3, 4시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아침 9시가 되어야 햇빛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도 매일 있는 일이 아니라 가끔 있는 일이다.
늘 회색빛이라고 생각되는 어두침침한 날들이 연속으로 이어져 언젠가 우울증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 날씨가 러시아의 겨울 날씨이다.
소설가 공영희 씨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말한 적이 있다.
‘독서에 적합한 건 어쩌면 가을이 아니라 겨울’이라고…
날씨 좋은 가을은 집에서보다 실외활동을 통해 아직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의 자연을 만끽해야 되고 휴식기에 들어가는 겨울에는 따뜻한 실내에서 독서를 즐기는 것이 더 좋을 듯싶다.
책은 지식만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다.
책은 읽고 있는 동안 그 안에 적혀있는 작가의 생각을 읽고 독자 자신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사고(思考)하길 바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각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할 수 없게 되고 독서를 한다고 해도 읽은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곱씹어보는 것보다는 1 초적 반사, 즉 읽자마자 '이해했고 이해했으니 끝이다!'라는 맥락을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피곤하다’, ‘힘들다’는 단어 뒤로 숨으며 어느 순간부터 생각 없이 사는 삶을 살게 되었다.
계속 이렇게 우리의 삶이 이어져 가야 될 것일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많아져 생각의 꼬리를 물고 생각의 바닷속에 빠져드는 것도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이 생각을 멈춰버린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위험한 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독서만큼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 수 있고 또 ‘생각’이 많이 필요한 것이 음악이라 생각한다.
말이 필요 없고 오직 7개의 음표에 샾(#), 플랫(b), 제자리표(♮), 이 3가지 만을 더해 상상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세계를 만들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라 간의 국경을 없애고 종족이나 연령 조차 나누지 않고 60억 인구 모두 들을 수 있고 공감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다.
새해가 밝았다.
사람은 왜 ‘시작’이란 단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필자 역시 ‘시작’을 좋아한다.
어차피 시간은 매일 흐르는 것이고 어제, 오늘, 내일, 이 순서가 변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새해’, ‘봄’이라는 계절의 의미와 시간의 의미, 단어가 주는 느낌은 많이 다른 듯싶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와 함께 힘차게 2021년을 향한 새 출발을 생각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싶다.
*러시아어는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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