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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라흐마니노프 1873-1943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전주곡 Op.32 No.13

by wj_s 202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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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Op.32 No.13 Рахманинов, Прелюдия Соч.32 NO.13 Rachmaninoff Prelude Op.32 No.13

2020년에는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24개의 프렐류드(전주곡), 전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것도 생생한 라이브로… 동생이 이번 년 프로젝트 연주로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전곡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반이나 멀리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가깝게, 아주 가깝게 연습하는 과정과 연주하는 과정 모두를 지켜볼 수 있었다. 

 

사실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전곡 연주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라는 작곡가 자체가 자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연주가 매우 어려운 곡을 작곡한 것은 기본이요, 게다가 라흐마니노프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이 표현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24개를 다 친다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전곡 연주를 하는 것 자체가 극히 드물다. 

 

 

라흐마니노프는 1892년부터 1910년까지, 약 20년 동안 24개의 프렐류드를 완성했다. 

1년에 몇 개, 이런 식의 작곡은 아니지만 1892년에 Op.3 No.2 한 곡, 1901년과 1903년에 Op.23의 10개, 그리고 1910년에 Op.32의 13개를 완성하면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작곡가로서, 특히 피아노 작품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의 묵직해지는 철학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전부터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를 자주 들었다. 모스크바에서 유학을 해서 러시아 작곡가를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쉽게 접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작곡가의 곡을 안 듣고 안 배운건 아니고, 그리고 러시아 작곡가의 곡을 들어도 싫어하는 건 잊어먹는 인간의 습성은 늘 살아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곡만 편식하고 살았다. 뭐, 지금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편식의 폭이 넓어졌을 뿐이지…

아무튼, 나의 최애 프렐류드는 Op.3 No.2였다. 라흐마니노프만의 그 ‘종소리’!! 이 종소리의 무게감에 빠지면 피아노의 베이스가 내는 깊은 종소리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Op.3 No.2만큼 푹 빠진 곡이 있었다. 바로 24개의 프렐류드의 마지막 곡이자 Op.32의 마지막 곡인 Op.32의 No.13이다.

 

이 곡을 들으면 삶이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부터 열정, 욕망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엔 그냥 부드럽게 음들을 밀고 간다. 그렇게 처음엔 라흐마니노프만의 서정성을 느끼며 천천히 음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음들이 부드러움보다는 더 단단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삶에 대한 욕망, 열정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어두운 구름이 걷히고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언제나 라흐마니노프는 어두운 마지막 바닥까지 뚫고 들어오는 강열한 빛, 삶, 희망을 노래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 좌절하고 쓰러져도 한줄기 빛이 나를 감싸 안아주고, 그 위안으로 힘을 얻어 따스함과 함께 희망을 느끼는, 또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이것이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가진 힘이고, 그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무게와 크기와 비례하는 만큼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쩌면 이 힘은 그가 힘들었을 때 자신을 지탱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에 녹아나는 것일 수도 있다. 

 

N. Lugansky

 

프렐류드의 마지막 곡이 이렇게 끝나는 이유는, 24개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큰 마침표를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인생의 마지막을 이민자로 살아야 했다. 타향살이가 누구에겐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는 미국으로 망명한 후 러시아어로 된 가곡, 오페라 작곡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것들을 불러줄 가수가 없어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의 미국에서의 삶이 행복하기만 할 수가 있었을까? 특히 미국 망명 초기 그는 손에 마비가 올 정도로 매일 같이 연주를 했다고 한다. 사실 연주라는 것은 참 고된 일이다. 누군가는 연주가 뭐 그리 힘드냐고 물을 것이다. 청중은 연주자의 무대 위에서의 2시간만 보는 것이지만 연주자는 그 두 시간을 위해 피땀 흘린 만 시간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정신적 스트레스와 압박 또한 연주하는 그 두 시간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연주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며칠이고 몇 달이고 연주자는 살얼음판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로 미뤄볼 때, 라흐마니노프는 늘 슬프고 힘든 삶을 살았고 그것들을 자신의 음악에 한 음, 한 음 새겨놓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그의 협주곡에, 그의 프렐류드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일상이어서, 감사하다고 생각지 못 한 일반적인 일들이 2020년 한 해동안 너무나도 그리운 일들로 변했다. 산책할 때 코 속으로 느껴지는 상쾌한 공기, 두려움 없이 상대방을 바라보고 이야기 하기, 편하게 영화관 가기, 여행 가기… 이 모든 것이 2020년 전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이었고 언급될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스크 속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보니 우리가 그냥 지나치며 생각조차 못 할 정도의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왠지, 12월 31일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날은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Op.32의 No.13을 듣고 싶어 졌다.

2020년을 무사히 지내왔다는 걸, 2021년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이 곡에 어울린 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보면 평범한 목요일이고 금요일이지만 그 하루 동안 1년이 지나간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밝은 빛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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