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13개의 프렐류드 Op.32
13 Прелюдии Рахманинова Соч.32 Rachmaninoff / Rachmaninov Preludes Op.32
✔️작곡 : 1910년
라흐마니노프는 늘 작은 피아노 소품을 작곡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제일 진전이 없는 건 작은 피아노 소품이야. 난 소품 작곡을 좋아하지 않아. 이것은 날 너무 힘들게 해!’
-1910년 7월 31일, Op.32 작곡 할 당시 라흐마니노프가 모로조프에게 쓴 편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소품 장르에 많은 신경을 썼다. 연주 스케줄이 엄청나게 늘어나자 레퍼토리 확장이 필요했고 새로운 곡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작곡된 Op.32, Op.33, 소나타 2번 b-moll, Op.36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즘의 대단한 절정기라 특징 지을 수 있다.
Оp.32는 1910년에 작곡 되었고 13개의 프렐류드로 구성되어 있다. 13개라는 이상한 숫자는 앞서 작곡된 11개의 프렐류드(Op.3 No.2 & Op.23)와 합쳐 24개의 모든 장/단조를 사용해서 작곡을 하여 하나의 완성된 프렐류드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32는 플래닝이 잘 되 있는 것이 느껴진다. 첫 곡인 C-dur는 에너지 넘치는 곡으로 비상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오프닝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곡인 Des-dur는 웅장하고 화려하여서 기념비적 결말을 나타낸다. 23과 함께 2개씩 짝을 지은 듯한 모습을 보이는 곡들이 있다. 예를 들어 E-dur и e-moll (3 & 4), f-moll и F-dur (6 & 7), a-moll и A-dur (8 & 9), h-moll и H-dur (10 & 11) 이다.
뭐,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Op.32를 하나의 작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작곡한 순서대로 연주한 적이 없다.
앞서 작곡한 Op.23과 비교하여 OPp.32는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서 사용 되는 비유적 영역 변화를 명확하게 찾을 수 있다. 서정적 분위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다.
1번(C-dur)은 Op.32의13개의 프렐류드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다. 경쾌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이 곡은 앞으로 우리가 들을 철학적이고 묵직한 느낌의 곡들을 밝게 맞이해주는 격으로 어찌보면 Op.32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리듬적 표현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2번(b-moll)이다. 여기서 사용된 셋잇단음표는 부점이기도 한데 변함없이 끝까지 이 리듬을 유지한다. 스케르초, 춤곡 성격은 리듬이 표현하고 있고 멜로디는 한숨, 애수에 잠긴 울음이 표현되었다.
가장 서사적이고 스케일이 큰 프렐류드중 하나가 3번(E-dur)으로 축제분위기를 띄고 있고 행진곡 형태다. 3번은 강열한 스케치 방법과 피아노 소리의 색채의 능숙한 사용이 특징이다. 이 곡에는 큰 무리의 군중의 움직임과 축제의 요란한 소리, 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소리 등이 담겨 있다. 이 모든 광경이 하나의 축하와 환희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이후 점점 소리가 작아지고 마지막 마디에는 축제의 소음과 즐거움의 메아리만 들리게 된다.
4번(e-moll)이 참 재밌는 곡이다. 이 곡은 듀엣 형식으로 음악적 생각이 담겨 있는데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모티브로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 모티브들은 하나는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으로 무장한 테마이고 다른 하나는 불안함이 가득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낭송과 레치타티보가 테마로 만들어진다. 이 음악적 재료는 자주 반복되면서 이 작품의 주요 음악적 아이디어(구상, мысль)의 근원으로 자리잡는다.
어두움(сумрачность), 불안하면서도 극적인것, 아니면 남성적이면서 장중한, 서사적인 분위기가 많아졌고 이런 분위기 중간 중간에 진심어린 서정성을 조금씩 만날 수 있다. 앞서 나열한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5번(G-dur)로 시적이고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밝은 분위기의 사색에 잠긴 서정성을 가장 잘 표현한 걸작이라 말할 수 있다. 이 곡에서도 새로운 작곡기법을 느낄 수 있다. 그래픽적인 기법과 차가운듯한 색채(색조, колорит)다.
가볍고 투명한, 뚜렷한 온음계를 사용했다. 전 곡에 걸쳐 p부터 ppp까지 정교하게 플래닝이 되어 있고 오직 한 군데, 딱 한 마디에 갑작스러운 f 뉴앙스가 나온다(в начале второй части двухчастной формы).
라흐마니노프의 특징 중 하나인 ‘졸졸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5도로 시작되어 옥타브가 넘어가게 확장되는 노래부르는 듯한 테마가 있다. 하지만 이 테마는 노래가 끝나기 전에 사라지고 나선형이 생각나게 만드는 음들까지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인상파 음악의 목가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끝말을 흐리는 것과 뭔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의 매혹적인 매력이라 말할 수 있다.
가장 드라마틱한 프렐류드 중 하나인 6번(f-moll)은 쉽게 자주 표현 되는 것으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감정의 주체가 힘든 그런 감정소모가 느껴지는, 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특히 6번은 어느 면으로는 교향시 <Колокола, The Bells, Op.35>의 3악장과도 닮은 부분이 있다.
특별히 섬세한 기법을 쓴 것이 7번(F-dur)이다. 표현력이 강한 2개의 멜로디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기법으로 작곡되었는데 이 ‘듀엣’ 기법은 23번의 마지막 프렐류드(Ges-dur) 가 생각나게 만든다. 하지만 Op.32 No.7의 멜로디가 더 espressivo 이고 더 뾰족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호소적인 요소가 가득 차 있고 개별적으로 선명한 톤이 분리되어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해 더 강조된다.
여기에 사용된 약박에 있는 16분음표 두 개의 반복은 숨겨져 있는 두군거림과 불안함을 표현한다.
이곡의 특이점은 차가운 느낌이 나게 끝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질문에 답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6번과는 대조적으로 밝은 느낌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음악을 듣기 쉽게 만드는 ‘멜로디’가 있는 곡이다.
Op.32는 리듬이 표현법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는 여러가지 방법의 리듬을 사용하여 엄청난 작곡 기교를 보여준다다. 소용돌이 치는 듯한 8번(a-moll)에서도 리듬적 기교를 느낄 수 있다. 중간에 베이스에서 멜로디가 들리는데 이 라인을 들어보는 것도 재미진다.
9번을 기점으로 서정적인 곡 두 개가 이어진다. 9, 10번이다. 하지만 두 곡의 서정성은 확연히 다르다. 9번(A-dur)은 꿈을 머금고 있는 듯한, 앞의 곡들과는 확연히 다른 서정의 세계다. 그렇지만 느긋하거나 유유자적한 것보다는 끊임 없는 16분음표들의 리듬으로 인해 머물고 있는 것보다는 흘러가는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다.
10번(h-moll)은 9번에 비해 ‘비애’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장, 단조의 차이도 있겠지만, ‘10번이 더 라흐마니노프스럽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정서인 듯 싶은데 이것은 작곡가 자신이 사랑하는 장르는 엘레지를 사용했고 이 엘레지가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이유는 매섭고 어두운 색채가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느린 리듬의 박자에 무거운 베이스가 가미되어 장송행진곡이나 장례식 종소리가 생각나게 만드는 것에서 ‘더욱더 라흐마니노프스럽다’ 라고 느껴지는 것 같다.
또한 이 곡은 아르놀트 뵈클린 (Arnold Böcklin, 스위스 화가, 1927-1901)의 그림 귀향(Die Heimkehr, The Homecoming, 1887)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뵈클린은 히틀러가 좋아했던 화가로 스위스 상징주의 작가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뵈클린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 하나 더 있다. 교향시 <죽음의 섬(Isle of the Dead> (1908) 이다. 뵈클린의 작품명 역시 죽음의 섬(Die Toteninsel, sle of the Dead, 1884) 이다.
베노 모이세비치(Бенно Моисейвич, Benno Moiseiwitsch, 러시아-우크라이나출신 영국 피아니스트, 1890-1963) 에게 말하길 ‘32-10은 자신의 프렐류드중 가장 좋아하는 곡’ 이라고 했다.
10번의 중간 부분은 멜로디와 리듬이 살짝 변형된다. 이것은 자신의 오페라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Франческа да Римини, Francesca da Rimini)>의 말라테스타(Ланчотто Малатеста, властитель Римини, Lanciotto Malatesta)의 아리오소 f-moll 같은 분위기를 가졌다.
11번(H-dur)은 춤곡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있고 코랄형식으로 쓰여져 있으며 부점이 있는 셋잇단음표가 기본 리듬으로 되어 있다. 똑같은 리듬이 반복되다 결국 점점 작아지며 끝을 맺는다.
노래같은 분위기는 12번(gis-moll)의 근본에도 깔려 있다. 이 곡의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사랑하는 유명한 곡 중 하나다. 밝은 5번과 달리 12번은 애수에 잠긴, 엘레지적 톤으로 감쌓여져 있다. ‘상류에서 흐르는 듯한’ 멜로디는 슬프게 사라진다. 무궁동 리듬과 함께 하는 격정적 성격의 멜로디는 특별한 표현법을 음악에서 들려준다. 테마는 갈수록 드라마틱해진다. 끝나기 직전 라흐마니노프 화성이 나오고 어디론가 휩쓸려 사라지는 듯한 분위기를 갖는다. 라흐마니노프는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효과를 사용한다.
13번(Des-dur)은 집중된, 몰두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앞서 있었던 프렐류드에 비해 느리고 스무스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3번의 음악이 소음(소란함)을 보여준다면 13번은 밝은 성당 종소리가 함께하는 성대한 행렬을 보여준다.
페테르부르그 평론가 콜로미체프(В. П. Коломийцев)는 13번 프렐류드에 대해 굉장히 아름답게 들리는 ‘Carillon(종소리, (프랑스어 번역: 주명종 악곡, 종악(鐘樂))’ 이라고 불렀다.
이 곡은 어느 의미에서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24곡의 마지막 곡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깊이와 의미가 다른 곡에 비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Op.32의 13개 프렐류드는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작곡 절정기의 표현 방법의 백과사전이라 말할 수 있다.
각각의 프렐류드는 하나의 작은 세계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야 한다.
*러시아어는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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