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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구노 1818-1893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by wj_s 202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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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Roméo et Juliette 5막

샤를 구노 Charles Gounod 1818-1893 프랑스 작곡가


✔️원작: 셰익스피어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대본: 빅토르 위고의 번역판으로 쥘 바르비에 Jules Barbier 와 미셸 카레 Michel Carré 작업
✔️작곡: 1867년
✔️초연: 1867년 4월 27일 파리 리릭 극장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많은 작곡가에게도 창작의 영감을 주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P. I. Tchaikovsky, 1840-1983)는 ‘환상 서곡(Fantasy Ouverture)’ 이라는 포맷으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작곡했고 프랑스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H. Berlioz, 1803-1869)는 극적인 교향곡(Roméo et Juliette, Op. 17)을 작곡하였다.
베를리오즈의 극적인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후에 같은 프랑스 작곡가인 구노의 오페라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20세기로 넘어와서는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 Prokofiev, 1891-1953)는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작곡하여 발레 레퍼토리에 아름다운 동화를 하나 더 첨부하였다. 또 세계적인 뮤지컬 중 하나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작으로 하여 뉴욕시 서부 외곽 지역의 10대 비행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뮤지컬 작곡은 지휘자로 유명한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1918-1990)이 했다.
이 외에도 오페라 <노르마>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곡가 벨리니의 오페라 <캐퓰릿 가와 몬태그 가(I Capuleti e I Montecchi)도 원작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사용했으나 이 오페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정확하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약간 개작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의 그 어느 작품보다도 영화를 비롯해 여러 클래식 작곡가들의 손을 거친 작품이 가장 많을 듯싶은데 그중 클래식 음악 무대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Roméo et Juliette)>이 아닐까 싶다.

1818년 파리에서 태어난 샤를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1818-1893)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프랑스는 예술의 모든 부분에서 많은 대가를 탄생시켰지만 유독 클래식 음악에서만은 오랜 시간 동안 옆 나라 독일과 이탈리아에 비해 ‘거장’의 클래스를 가진 작곡가를 탄생시킬 수 없었다.
특히 오페라 작곡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없어서 샤를 구노는 프랑스 음악사, 특히 오페라 분야에 있어서 특별한 존재이다.
그의 아버지는 훌륭한 미술가였다. 하지만 구노가 5세 때 사망하였고 다행히도 어머니가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어머니에게서 음악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구노의 첫 번째 피아노 선생님이 바로 어머니셨고 그런 재능 있는 예술가 부모님의 피를 이어받은 구노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바로 보여주었고 이것을 계기로 1836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음악원 재학 중인 1839년 그는 칸타타 <페르디난드(Ferdinand)>로 로마 대상을 수상하여 이탈리아 로마로 3년간 유학을 가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로마에서의 유학은 자신이 좋아하는 종교적 음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옛 종교 음악을 연구한 것이 나중에 큰 재산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건 로마 유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일어났다.
3년간의 로마 생활을 뒤로하고 구노는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들렸다.
아무래도 당시 클래식 음악을 주름잡고 있는 곳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빈이였기 때문에 파리에서 접하기 힘든 음악도 접해보고 유행하던 음악도 들어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노는 슈만과 베를리오즈를 만나게 되었고 이 만남으로 인해 오페라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만남이 없었다면 구노의 대표작인 오페라 <파우스트(Faust)>와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10편이 넘는 오페라를 작곡한 그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다시금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사랑했던 종교적 작품으로 돌아왔고 19세기 후기 작곡가 치고 완전 고전적 양식의 작품인 오라토리오 <구원(La rédemption, 1882)>와 <삶과 죽음(Mors et Vita, 1885)>을 작곡한다. 그 후 1870년 보불전쟁이 일어나 파리를 잠시 떠나 있어야 할 때 런던에 머물며 구노 합창단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후에 앨버트 협회 합창단(왕립 합창협회)의 기초가 되었다.
종교음악부터 세속적 작품의 끝판왕인 오페라까지 다양한 장르를 작곡한 구노는 1893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생 클로드라는 도시에서 사망한다.

구노를 ‘깃털처럼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은 프랑스 음악’, 특히 프랑스 오페라의 대가의 반열에 들 수 있도록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사용한 오페라 <파우스트>다. 하지만 진정한 대가의 입지를 다진 작품은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Roméo et Juliette)>은 상당히 오랜 기간이 소요된 작품이다.
1839년 21세의 구노는 베를리오즈의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리허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리허설을 본 구노는 베를리오즈의 작품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충격으로 인해 언젠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오페라로 만들어 보리라는 꿈을 꾸게 된다.
이 꿈이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작이었다.
그 후 3년 동안의 로마 유학 시절 이탈리아의 유명한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의 대본을 입수하여 작곡을 시도하였다.

펠리체 로마니는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오페라 대본작가, 음악평론가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인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 등의 오페라 대본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도니제티의 대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로마니가 일주일 만에 대본을 완성하고 도니제티가 일주일간 곡을 붙여 탄생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본이었으니 이 대본을 본 구노는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이것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오페라로 만들어야겠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노는 이탈리아어에 익숙지 않아 로마니가 쓴 대본에서 캐릭터의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작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좌절 속에서도 구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작품들을 작곡하게 되고 1867년 50세가 되던 해 프랑스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영감을 받아 다시 오페라 작업을 시작한다.
1867년 출판된 프랑스어판 셰익스피어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번역한 작품이었는데 대가가 번역한 대가의 작품인 데다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작품을 모국어로 읽었기에 구노에게 큰 영감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위고의 번역판을 가지고 쥘 바르비에(Jules Barbier)와 미셸 카레(Michel Carré)라는 대본작가 두 명에게 공동작업을 부탁했고 이 대본을 바탕으로 구노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할 수 있었다.
구노가 오페라에 대한 구상을 한 지 28년 만에 이루어진 꿈이었다.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원한다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이루어진다는 걸 보여준 것이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인 듯싶다.

그런데 어느면으로는 28년을 기다린 것이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겐 너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구노가 베를리오즈의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었던 21세에 바로 이 곡을 작곡했더라면 이렇게 극적인 오페라가 되지 않았을 듯싶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구노의 대표작인 오페라 <파우스트>가 작곡되고 8년 후에 작곡된 오페라이다. <파우스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구노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예술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쉴 새 없이 구노는 여러 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하지만 <파우스트>와 <로미오와 줄리엣> 사이에 작곡된 오페라는 모두 실패했다. <파우스트> 만큼 좋은 작품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오페라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파우스트>가 있었기에 오늘날 <로미오와 줄리엣>이 존재한다고 할 정도이다. 그만큼 한 개의 거대한 대작이 히트를 치고 다음 작품의 성공과 실패에 연연치 않고 꾸준히 작품을 썼기에 섬세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가득한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구노가 오페라를 작곡하던 시대는 음악의 아름다움이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주인공의 심리적 표현이었다. 오페라가 가지고 있는 드라마의 전개도 중요했지만 그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표현해나가는 ‘주인공 자신’의 모습도 굉장히 중요했는데 특히 여성의 섬세하고 신비로운 성격, ‘여성성’ 이 강조되던 때였다.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쓴 줄리엣도 굉장히 유니크한 여주인공이었지만 구노의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구노의 세월이 흐르며 점점 더 노련해진 멜로디 라인을 함께 하여 가장 프랑스적인 오페라 주인공이 되어 더욱더 멋진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오페라의 줄리엣은 원작에 충실한 만큼 로미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미오가 극을 끌어가는 중심에 있다는 느낌을 주고 그의 언어와 분위기가 훨씬 극적이었다면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은 줄리엣이 극을 끌어가는 중심에 있고 그녀가 더 부각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앞서 말한 프랑스 오페라의 특징인 ‘여성성’ 이 강하기 때문인 듯싶다.
처음 그녀가 오페라에 등장하는 캐퓰렛 가의 가면무도회에서 부르는 ‘줄리엣의 왈츠’로 더 유명한 아리에타 ‘꿈속에 살고파라(Ah! Je veux vire)’를 들으면 쾌활하고 적극적인 ‘소녀’ 줄리엣을 만날 수 있다.
거리낌 없고 당찬 그녀는 2시간 30분 만에 성숙하다 못해 너무 성숙한 한 여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로미오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 그를 사랑하고 아무리 원수인 집안이고 사촌인 티볼트가 그를 죽도록 싫어한다 해도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그와 함께 할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가진 여인이 되어 간다. 그리고 그와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그 후 로미오가 한순간의 실수로 그녀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도 그녀는 침착하게 그와 함께 한다. 그리고 줄리엣의 부모님이 마음에도 없는 귀족 청년 패리스와 결혼을 시키려 할 때도 소용돌이치는 혼란과 패닉 속에서도 침착하게 ‘죽음을 위장’ 하기로 마음먹는다. 성장한 줄리엣은 어쩌면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잠을 위한 독약을 마시며 부르는 아리아 <신이여, 저의 용기를 소생시켜 주소서(Dieu! Qual frisson court dans mes veines?)>에서 잘 나타난다. 줄리엣은 이제 오페라 처음에 우리가 만났던 철부지 소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오페라는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스테파노(Stephano)라는 로미오의 몸종이 나오는데 스테파노는 남자 역할이지만 소프라노가 남장을 하고 부른다.
둘째는 원작에서는 마지막 죽음의 장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엇갈려 죽어서 마지막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구노는 오페라에서 불쌍한 두 연인이 몇 분만이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피날레 2 중창을 만들어 주었다.
구노도 독자들 같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하고 제각각 죽는 것이 마음 아팠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두 주인공의 사랑과 죽음의 슬픔을 노래하는 것이 극적 효과를 더할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오페라 1막의 ‘서곡-프롤로그’를 좋아한다. 이 서곡은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써져 있는데 보통의 오페라는 서곡으로 시작되거나 프롤로그로 시작되는 뭔가 둘 중 하나만을 택하지만 구노는 서곡-프롤로그라는 형식을 취해 오케스트라의 서곡 후 셰익스피어의 원작의 서문을 합창 형식으로 들려준다.
서곡에서 구노가 들려주는 박진감은 순식간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두근거리는 감성을 가지게 된다. 거기다 서곡 후 나오는 프롤로그 합창은 종교적 음악을 좋아하고 그런 종류의 곡들을 많이 작곡했던 이력이 있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종교성 음악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 함께 더해 비극적 색채를 더욱더 두껍게 만들어낸다.
특히 무반주 합창 이후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비극적 멜로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우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을 다시한번 알려주며 오페라를 시작하는 것 같다.

아래 영상의 01:00-07:00에 해당하는 게 '서곡-프롤로그'다.

Gounod Romeo et Juliette

Gounod Romeo & Juliette 'Ouverture' by Slovak PhilarmonicaOrchestra


‘무대에서의 사랑은 희극이고, 때로는 비극이다. 하지만 인생에서의 사랑은 훨씬 지독하고, 때로는 매혹적이고, 때로는 격렬하다.’라고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잠시 동안 우린 로미오와 줄리엣이 며칠 동안 겪었던, 누구에게는 평생의 시간이 주어져도 겪을 수 없는 그런 애잔한 사랑을 함께 경험했다. 나 자신이 줄리엣이 되어보기도 하고 로미오가 되어보기도 하면서…
현실의 사랑은 어떨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 더 힘들고 아픈 것일까?
정말 그럴까?
14살도 채 안 된 소녀가 3일 만에 여자로 거듭난 줄리엣의 사랑보다 현실의 사랑은 더 지독한 사랑일까?…

✍️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2022.10.04 - [Literature/셰익스피어 1564-1616] - 셰익스피어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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