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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레스코프 1831-1895

레스코프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줄거리 요약 (240 단어)

by wj_s 2020.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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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Леди Макбет Мценского уезда 

Lady Macbeth of the Mtsensk District

니콜라이 레스코프 Николай Семёнович Лесков 1831-1895, 러시아 소설가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레스코프가 1864년에 쓴 중편 소설이다.

한국에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이라고 번역, 출판돼있기도 하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사형수의 아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일요일 밤 늦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시간도 시간이었고 내용도 내용인 만큼 섬뜩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청을 한 기억이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생각 난 책이 있다.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중편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Леди Макбет Мценского уезда (повесть))>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인 레스코프는 러시아 오페라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중편이 바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Леди Макбет Мценского уезда)>의 원작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세묘노비치 레스코프(Николай Семёнович Лесков, 1831-1895)는 1831년 2월 4일(2월 16일) 오를 지방에 있는 고로호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지금의 스베르들롭스키 현의 오를 지방이다.

 

문학평론가이자 기자인 스뱌토폴크-미르스키(Дмитрий Петрович Святополк-Мирский, 1890-1939)는 레스코프에 대해

“러시아인들은 레스코프에 대해 제일 러시아적인 작가로 인정한다. 그는 러시아 민족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느낌의 본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 라고 1926년 자신의 글에서 밝혔다. 

이렇게 러시아 민족적인 성향과 함께 그의 본질적 바탕이 된 것은 어린 시절 8년간 키예프에서 사는 동안 체험한 우크라이나 문화와 이모부인 스콧(A. Scott, 1800?-1861)의 영향으로 가까워진 영국 문화였다. 

 

레스코프의 아버지인 세묜 드미츠리예비치 레스코프(1789—1848)는 종교적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니콜라이 세묘노비치는 1871년 4월 16일 쉐발스키(П. К. Щебальский)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그는 크고 멋진 영리한 사람이었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수도사였다.” 라고 썼다.

레스코프의 아버지는 종교와의 관계를 청산한 후 오를 지방의 형사법원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꽤 높은 지휘까지 승진을 해서 후새에 귀족 칭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동시대 사람들은 그에 대해 통찰력이 강한 조사자였고 그래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을 많이 풀었다고 한다. 

레스코프의 어머니 마리아 페트로브나 레스코바(결혼 전 성은 알페리예바, Мария Петровна Лескова (урожд. Алферьева))는 몰락한 모스크바 출신의 귀족이었다. 그녀의 자매 중 한 명은 오를 지방의 부유한 지주와 결혼했고 다른 자매는 영국 부자와 결혼을 했다. 남동생인 알렉세이(Алексей)는 의대를 나와 의학박사가 되었다. 

 

레스코프는 오를(Орл)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39년 아버지가 상사와 싸워서 도지사의 화를 돋아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 후 그의 가족(아버지, 어머니, 두 형제, 두 자매)은 크로믜(Г. Кромы) 근처에 있는 파니노 마을(село Панино (Панин хутор))로 이사를 했다. 이 곳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러시아 민족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1841년 8월, 10세 때 레스코프는 오를 지방의 김나지움(Орловская губернская гимназия)에 1학년으로 입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공부를 무지 못 했다. 5년 동안 2학년만 다닌 걸로만 봐도 얼마나 공부를 못 했는지 알 수 있다. 문학연구가 부흐쉬타브(литературовед Б. Я. Бухштаб)는 네크라소프(Н. А. Некрасов, 시인이자 언론인)와 레스코프(Н. С. Лесков)의 비론(比論)에서 ‘두 사람의 경우 한 쪽으로는 무관심이 강했다. 한 마디로 말해 기계적 암기를 혐오했고 그 당시 교육기관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공부의 오랜 관습을 싫어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지적 욕구는 계속 늘었다.’ 라고 이야기 했다.  

 

1847년 6월 레스코프는 아버지가 일했던 형사법원에 취직했다. 1848년 콜레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레스코프는 승진하여 오를지방 형사 법원 사무장의 비서가 되었다. 하지만 1849년 12월, 키예프 재무 상공회의소로 발령받길 원했다. 그래서 키예프에 살고 있는 외삼촌 알페리예프(С. П. Алферьев)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1850년부터 1857년까지 키예프에서 사는 동안 레스코프는 청강으로 대학 수업들을 다녔다. 특히 폴란드어와 이콘화(иконопись, 성상 화술(聖像畵術))에 관심이 많았고 종교-철학적 학생들의 모임에 참여했다. 순례자들과 함께 어울렸고 성직자들, 종파분자들과도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했다. 

또한 농노 소유권 폐지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경제학자 주랍스키(Д. П. Журавский)가 레스코프의 세계를 보는 시각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1857년 레스코프는 일하고 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이모부인 영국인 스콧(А. Я. Шкотта (Скотта))이 운영하던 무역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취직 후 이모부와 함께 <쉬콧과 빌켄스(Шкотт и Вилькенс)>이란 영화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실질적 일들을 많이 배웠다고 한다. 특히 공업과 농업에 대한 실무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또한 영화와 일 때문에 러시아 여러 지방을 많이 다니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여러 지방에 있는 많은 부족들의 삶과 언어와 마주할 수 있었다. 후에 레스코프가 “많은 것을 보고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라고 회상했다.

 

얼마 후 무역회사가 문을 닫았고 1860년 레스코프는 키예프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는 기자와 문학가 생활을 시작했고 반년 후 페테르부르크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는 베르나드스키(И. В. Вернадский)의 집에서 기거하기 시작했다. 

레스코프는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자신의 작품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26세가 되던 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식(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ие ведомости), 1859—1860> 이라는 신문에 단평 몇 개가 실렸었다. 그리고 몇 가지 기사는 발테르(А. П. Вальтер)가 키예프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현대 의학(Современная медицина)>에 실렸다. 이렇게 작가의 길을 가기 시작한 그는 그 후 페테르부르크의 수많은 잡지와 신문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1860년대 레스코프는 스테브니츠키(М.Стебницкий)라는 필명을 사용해 활동했었다. 그 후 니콜라이 고로호프(Николай Горохов), 니콜라이 포누칼로프(Николай Понукалов), 페레스베토프( В.Пересветов), 프로토자노프(Протозанов), 프레이쉬츠(Фрейшиц), 카스토르스키 신부(свящ. П.Касторский), 시낭송인(Псаломщик), 시계 애호가(Любитель часов), 군중 중 한 사람(Человек из толпы)등 여러 필명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1863년 <사향소(Овцебык)>를 시작으로 <종말(Некуда), 1864>,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Леди Макбет Мценского уезда), 1865>, <수도원의 사람들(Соборяне), 1872>,  <봉인(封印)된 천사(Запечатленный ангел), 1874>,  <왼손잡이(Левша), 1883> 등 급진적인 지성을 꼬집은 초기 작품부터 민간 전설에 의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특히 <왼손잡이>는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편 소설 중 하나라고 꼽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렇게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895년 3월 5일(2월 21일) 레스코프는 천식 발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죽기 5년 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천식은 결국 그를 저세상으로 데려갔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볼코브스코예 묘지(Волковское кладбище)에서 사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Леди Макбет Мценского уезда)은 니콜라이 레스코프(Н. Лесков)가 쓴 중편 소설이다. 소설가 자신이 그의 작품 모음집에 1864년 11월 26일 키예프라고 적어놨다.

그는 1864년 가을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가 자신은 수필이라 분류하였다.

이 중편 소설이 세상에 처음 선 보인 건 1865년 1월 <시대(Эпоха)>라는 잡지에 <우리 동네의 맥베스 부인(Леди Макбет нашего уезда)>이라는 제목으로 였다. ‘특별히 우리 동네의 전형적인 한 종류의 여성상에 대한 수필 모음’ 중 하나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 후 처음으로 잡지 <시대>에 실린 글을 상당 부분 문체적 수정을 하고 1867년 <스테브니츠키의 소설집(Повести, очерки и рассказы М. Стебницкого)>에 이 중편 소설이 담겨졌다. 이때 지금의 제목인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라고 정해졌다. 

레스코프 자신은 이 중편소설에 대해 어두운 이야기이고 절재 된 톤의 냉정한 습작으로 강하고 열정적인 여성의 성격을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중편소설은 러시아 여성의 성격을 묘사한 작품 모음집(цикл о характерах русских женщин)이 되었어야 했다. <맥베스 부인(Леди Макбет)> 후로 <그라치엘라(Грациэлла)>(귀족부인(дворянка)), <소령 폴리보도프의 아내(Майорша Поливодова)>(늙은 상류사회의 지주 부인(старосветская помещица)), <페브로니야 록소브나(Февронья Роховна)>(крестьянская раскольница(농민 분열주의자)), <벼룩 할멈(Бабушка Блошка)>(산파(повитуха)) 를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모음집은 끝까지 쓰지 않았다. 아마도 이 모음집을 실어준다고 약속했던 잡지 <시대>가 얼마 후 폐간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편소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의 제목은 투르게네프(И. С. Тургенев)의 단편소설 <쉬그로브스키의 햄릿(Гамлет Щигровского уезда)>의 풍자를 담고 있기도 하다. 

 

 

 

줄거리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젊은 장사꾼의 아내 카테리나 리보브나 이즈마일로브나(Катерина Львовна Измайлова)이다. 그녀의 남편은 늘 일 때문에 출장 중이다. 그래서 그녀는 늘 크고 부유한 집의 네 벽으로 둘러싸여 무료하고 외롭게 지낸다. 남편은 자신이 불임이어서 아이를 갖지 못 하지만 시아버지와 함께 그년 카테리나에게 자식이 없는 탓을 하고 있다. 

카테리나는 새로운 일꾼으로 들어온 세르게이(Сергей)를 사랑하게 된다. 처음엔 그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장난에 불과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점점 열정으로 변했고 연인은 밤을 함께 보내기 시작한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불륜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쇄 살인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시아버지를 독살한다. 왜냐하면 시아버지가 그 둘의 관계를 눈치채고 세르게이를 지하실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르게이를 살리기 위해 그녀는 시아버지를 죽인다. 그 후 세르게이와 함께 남편을 죽이고 어린 조카 페자(Федя)가 자는 동안 베개로 기도를 눌러 죽인다. 조카는 살아있을 경우 카테리나가 유산을 상속받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마당에 축제를 즐기던 남자들이 물밀듯 들어오고 그중 한 명이 창문을 통해 이 살인 장면을 보게 된다. 페자는 부검을 통해 호흡곤란에 의해 죽었다는 게 증명되었고 세르게이는 신부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범죄를 모두 시인했다. 형사들은 지하실에 묻혀있는 지노비 보리소비치(Зиновий Борисович)의 시체를 찾아냈다. 살인자들은 재판을 통해 죗값을 치르기 위해 형무소로 향한다. 세르게이는 카테리나가 부유한 상인의 부인에서 죄인이 되자 순식간에 그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는 다른 여죄수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카테리나의 눈 앞에서 그 여죄수를 쫓아다니고 카테리나가 세르게이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을 비웃는다. 결국 카테리나는 자신의 연적인 소네트카를 부여잡고 그녀와 함께 찬물이 흐르는 강으로 몸을 던진다. 

 

어찌 보면 요즘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는 범죄 드라마나, 현실 속에 있는 범죄 중 한 장면 인 듯한 소설이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불륜이라는 테마를 많이 다루었다. 

하지만 레스코프보다는 조금 더 사랑에 집중을 하고 내면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듯싶다. 

레스코프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다른 작품에 비해 훨씬 더 원색적인 것 같다.

 

우리는 늘 수많은 유혹 속에서 살고 있다.

가끔은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게 되고 그것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유혹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 누구도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할 수 없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듯싶다.

그렇기에 내 삶에 지루하고 나른한 시간이 다가오면 유혹의 손길에서 벋어 나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즐겁고 행복할 것만 같았던 일들이 불행과 타락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있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의 잘못된 결정이 인생의 모든 순간을 뒤틀림으로 만들 수 있다. 

 

나의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

우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이 우리가 사는 인생 중 가장 즐겁고 값진 시간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사람 모두에 의해 얼마나 멋진 ‘라이프’를 사는지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달콤하고 위험한 유혹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물리칠 수 있다. 

 

 

레스코프 원작의 오페라가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2021.03.13 - [Music/쇼스타코비치 1906-1975] -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줄거리 요약 & 등장인물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줄거리 요약 &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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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는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의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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