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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쉐드린 1932-

쉐드린 발레 "안나 카레니나"

by wj_s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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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안나 카레니나 Анна Каренина  Anna Karenina / 3막

로디온 쉐드린 Родион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Щедрин (1932 - ), 러시아 작곡가

✔️원작 :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 (1873-1877)

✔️대본 : 보리스 리보프-아노힌

✔️안무 : 나탈리야 릐젠코, 빅토르 스미르노프-골로바노프 & 마야 플리세츠카야

✔️작곡 : 1971년

✔️초연 : 1972년 6월 10일 볼쇼이 극장, 모스크바

✔️*초연 지휘 & 연출 : 유리 스미르노프

Борис Львов-Анохин(1926-2000) / Наталья Рыженко(1938-2010) / Виктор Смирнов-Голованов

*Дирижёр-постановщик : Юрий Симонов(1941- )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두께부터 쉽게 다가가지 못할 포스를 자랑하지만 인생사라는 게 복잡하고 다양한 만큼 어찌 보면 이 정도의 두께 만으로도 정리를 했다는 건 ‘그래도 톨스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톨스토이가 만들어낸 ‘안나’는 많은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아직 생존하고 있는 러시아 작곡가중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고 있는 쉐드린의 발레 <안나 카레니나>가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톨스토이가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세계인 ‘레빈’ 보다 소설의 제목이자 여주인공인 ‘안나’를 더 자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조금 더 <안나 카레니나> 라는 제목에 더 어울리는 듯싶다.

 

로디온 쉐드린(Родион Щедрин, 1935- )은 현존하는 러시아 작곡가중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이다.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의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인 콘스탄틴 미하일로비치 쉐드린(Константин Михайлович Щедрин,1894—1955)은 유명한 교수이자 음악학자였고 어머니(Конкордия Ивановна Щедрина)는 경제학자였는데 음악 애호가였다. 그래서 그의 집에선 늘 음악이 넘쳐흘렀고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덕분에 쉐드린은 이른 나이부터 음악적 소향을 잘 갖출 수 있었다. 

쉐드린 집안의 자랑은 피아노 트리오였는데 작곡가 아버지인 콘스탄틴 미하일로비치와 삼촌들이 직접 연주를 하는 피아노 트리오였다. 하지만 힘든 시기도 있었다. 쉐드린은 2번이나 전쟁에 나갔어야 되었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중에 쉐드린이 그 시절을 여러 번 회상하였고 이런 아픔은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트바르도프스키(А. Твардовский, 1910-1971)의 시를 합창에 사용한 <교향곡 2번(1965)>에는 1968년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은 자신의 형제를 기리기 위해 작곡되었고 <포에토리야(Поэтория, 1968)> - 보즈네센스키(А. Вознесенский, 1933-2010)의 시를 사용한 곡으로 시인, 여성 목소리,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 또한 전쟁을 겪으며 느낀 감정을 담아 작곡된 곡이다. 

하지만 전쟁이 그에게 안 좋은 기억만 준 것은 아니다.

1941년 10월 대조국 전쟁(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1941-1945)이라고 불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쉐드린 가족은 사마라(Самара)라는 도시로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세계적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Д. Шостакович, 1906-1975)도 그 도시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곳에서 자신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를 완성했고 사모수드(С. Самосуд, 1884-1964)가 지휘한 초연의 총 리허설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꾸준히 쉐드린이 어려울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945년 12살의 쉐드린은 개교한 지 얼마 안 된 합창 학교, 지금의 스베쉬니코프 합창 학교(Хоровое училище им. А. В. Свешникова)에 입학하게 된다.

이 곳은 음악 이론은 물론이고 성악이 가장 중요한 과목이었다. 10년 후 쉐드린은 “내 생애 첫 영감은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 받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합창 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쉐드린은 한꺼번에 작곡과 피아노, 2개의 전공을 선택했다. 작곡은 샤포린(Ю. Шапорин,1887-1966)에게 사사했고 피아노는 플리에르(Я. Флиер, 1912—1977)에게 사사했다. 두 교수님 모두 당시 최고로 유명한 교수들이었기에 쉐드린은 음악원 재학 시절 동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졸업을 1년 앞두고 자신의 첫 피아노 협주곡(1954)을 작곡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초기 작품은 독창성과 생동감 있고 감정이 넘쳐난다는 평을 받아 음악원 4학년 학생이었던 쉐드린을 작곡가 협회(Союз композиторов) 에서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작곡과 피아노, 두 전공을 모두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박사 과정에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더욱더 넓고 깊게 만든다. 작곡 초기에는 <교향곡 1번(1958)>, 발레곡, 오페라 <사랑뿐 만이 아닌<1963)>,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1963), 영화음악, 연극을 위한 부수음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작곡하였다. 

영화 <고도(高度, Высота)>에 삽입된 ‘즐거운 행진곡(Веселый марш)’은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1966년 쉐드린은 두 번째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한다. 이 오페라는 10년 만에 완성되었는데 리브레토(대본, Libretto)는 쉐드린이 직접 썼으며 그의 문학적 소양을 잘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 중 음악계가 굉장히 좋아한 건 고골(Н. Гоголь, 1809-1852)의 소설을 대본으로 사용한 오페라 <죽은 혼(Мертвые души)> 이다. 

이 작품은 1977년 포크롭스키의 연출로 볼쇼이 극장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 무대로 인해 <봉인된 천사>라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봉인된 천사(Запечатленный ангел, 1988)>는 1992년 러시아국가상을 수상 작품으로 합창과 플륫을 위한 곡이며 러시아 소설가 레스코프(Н. Лесков, 1831-1895)의 동명 소설을 대본으로 사용했다.

쉐드린은 평생 러시아 문학 작품을 음악 안에 잘 녹여냈는데 체홉(А. Чехов, 1860-1904)의 <갈매기(Чайка, 1979)>,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Даме с собачкой, 1985)>와 톨스토이(Л. Толстой, 1828-1910)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Анна Каренина)>는 발레를 위한 음악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러시아 발레 레퍼토리에 큰 기여를 했는데 특히 러시아 문학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기에 러시아 발레 역사에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발레 <카르멘 모음곡(Кармен-сюита, 1967)>은 비제 오페라 <카르멘(Carmen)>을 모티브로 사용한 것으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쉐드린의 발레곡은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이유는 자신의 인생의 반려자인 마야 플리세츠카야가 함께 만든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마야 플리세츠카야(Майя Плисецкая, 1925-2015)는 ‘20세기 최고의 발레리나’로 꼽혔던 전설적인 러시아 발레리나이자 쉐드린에게 있어 평생 동안 뮤즈(muse)이기도 했다.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하고 어머니는 ‘조국을 배반한 사람들의 아내들’을 위한 수용소로 보내졌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고아로 자라는 것이 싫어서 마야를 당시 볼쇼이 극장 발레리나였던 이모에게 양녀로 보냈다. 그랬기에 플리세츠카야가 발레리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운명의 장난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싶다.

1941년 대조국 전쟁 때 그녀도 피난을 갔는데 쉐드린과 같은 도시가 아닌 스베르들롭스크(Свердловск)로 가게 되었다. 전시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곳엔 꾸준히 발레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그녀의 첫 무대가 되었다. 피난 간 스베르들롭스크에서 플리세츠카야는 유명한 안무가 미하일 포킨(Михаил Фокин, 1880~1942)이 세계적인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Анна Павлова, 1881-1931)를 위해 만든 <빈사의 백조(Умирающий лебедь)>를 추게 된다. 1942년 그녀는 모스크바로 돌아오게 되었고 계속해서 발레 학교에서 발레리나를 향한 꿈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다. 1943년 졸업과 동시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Московский Большой Театр)에 들어갈 수 있었고 곧 솔로 파트를 출 수 있게 되었다. 역시 프리 마돈나는 어디서든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인의 소개로 쉐드린을 만나게 되고 1958년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된다. 

<볼레로>, <스파르타쿠스>, <로미오와 줄리엣> 등 볼쇼이 극장의 간판스타였던 그녀는 2015년 향년 89세로 세상과 작별을 했고 전 세계인들은 슬픔으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공산당의 탄압 때문에 한 때 출국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쉐드린, 플리세츠카야 부부는 꾸준히 자신들의 예술적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발레 <안나 카레니나>가 두 사람의 협업으로 인해 탄생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 듯싶다. 

발레 <안나 카레니나>는 1967년부터 마야 플리세츠카야의 머릿속을 맴돌던 아이디어이다. 1967년 그녀는 영화 <안나 카레니나>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영화 음악을 쉐드린이 작곡하고 있었다. 

플리세츠카야는 발레 <안나 카레니나>를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난 벳시 트베르스카야 공작부인(княгиня Бетси Тверская)역을 맡고 있었는데 촬영장에서 촬영을 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안무로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쉐드린이 영화를 위해 작곡한 곡들은 극적인 요소가 많고 조형적인 면이 있어 발레를 위해 안무를 만드는데 좋은 음악이었다. 그 음악은 춤을 추기 좋았지… 촬영 내내 난 영화감독과 언쟁을 하였고 결국 쉐드린은 자르히(А. Зархи,1908-1997) 감독과 미친 듯이 싸웠지. 그는 음악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했거든. 그래서 내가 말했어. 발레를 만들자. 완전 새롭게… 우리의 발레를…” 

 

처음부터 그녀가 발레를 만들 생각을 하진 않았다. 우선 이고르 벨스키(Игорь Бельский,1925-1999)에게 발레의 안무를 부탁했다. 그다음 후보는 나탈리야 카사트키나(Наталья Касаткина, 1934- )와 블라디미르 바실료프(Владимир Василёв, 1931- )였다. 하지만 그들의 안무는 플리세츠카야가 느끼기에 너무 극단적이어서 결국 그녀는 자신이 이 발레의 안무를 맡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발렌틴 플루체크(Валентин Плучек,1909-2002) 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플리세츠카야에게 연극 연출가이자 발레 평론가였던 보리스 리보프-아노힌(Борис Львов-Анохин, 1926-2000)를 발레 대본작가로 추천했고 무대 디자이너인 발레리 레벤탈(Валерий Левенталь, 1938-2015)을 무대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었다. 

발렌틴은 무대 연출 과정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플리세츠카야는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인 안나, 브론스키와 카레니나 역할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군무는 조수들이 었던 나탈리야 릐젠코(Наталья Рыженко, 1938-2010) 와 빅토르 스미르노프-골로바노프(Виктор Смирнов-Голованов, 1934-2013)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나탈리아와 빅토르는 볼쇼이 발레단의 단원이었고 여러 편의 텔레비전을 위한 발레 버전의 안무를 통해 안무가로서의 재능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은 플리세츠카야에게 발레 <안나 카레니나>를 만드는 데 있어 큰 힘이 되었다. 

1971년 가을 볼쇼이 극장 내에 있는 베토벤 홀에서 쉐드린은 볼쇼이 극장 예술 위원회 앞에서 발레 음악을 연주했고 플리세츠카야와 리보프-아노힌은 발레의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톨스토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발레 무대로 옮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발레를 위해 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안무와 톨스토이의 경이적이고 리얼한 이야기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는... 하지만 우린 프로코피예프(С. Прокофьев, 1891-1953)가 오페라 <전쟁과 평화>를 통해 보여준 천재적인 실험을 알고 있습니다. 오페라도 발레만큼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거예요.”

 

"꼼꼼하게 여러 번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 톨스토이의 강력한 리얼리즘이 상징까지 탁마 된 것을 찾아 낼 수 있답니다. (‘상징까지 탁마된 리얼리즘’ 은 유명한 러시아 극작가이자 연극평론가, 연극연출가인 네미로비치-단첸코(Вл. И. Немировича-Данченко, 1858-1943)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이건 안무 예술의 영역이었죠.” 당시 상황에 대해 보리스 리보프-아노힌은 이렇게 회상하였다. 

 

첫 번째 오케스트라 리허설 후 발레 <안나 카레니나>의 초연은 무산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소련 문화부 장관이었던 푸르체바(Е. А. Фурцева,1910-1974)의 비공식 지시로 문화부 직원들이 그 리허설에 참관했고 발레 연습을 중지시켰다. 하지만 플리세츠카야와 쉐드린은 당시 당 서기장이었던 데미체프(П. Н. Демичев, 1918-2010)에게 조력을 구했고 결국 데미체프의 지시로 발레의 초연을 다시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순탄치 않은 초연은 1972년 6월 10일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무대 감독은 발레리 레벤탈, 연출과 지휘는 지휘자 유리 시모노프(Юрий Симонов, 1941- )가 맡았다. 

주인공인 안나 역은 당연히 마야 플리세츠카야가 맡았고 브론스키는 마리스 리에파(Марис Лиепа, 1936-1989), 카레닌은 니콜라이 파데예체프(Николай Фадеечев, 1952- )가 맡았다.

발레는 볼쇼이 극장 무대에 103번 올라갔고 1985년 7월 29일 마지막이 되었다. 1974년 이 발레를 영화화했지만 오랜 시간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В. Гергиев, 1953- )의 노력으로 2010년 4월 1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톨스토이가 담은 수많은 이야기를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에 다 넣을 수는 없었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음악을 만들고 사랑하는 아내가 안무를 맡아 만들어진 발레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만약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발레 <안나 카레니나>의 속편이 제작된다면, 이 소설에 담겨있는 다른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야 플리세츠카야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버렸고 쉐드린도 이젠 고령이기에 이 발레의 속편은 없을 듯싶다.

플리세츠카야는 죽기 전 남편이 죽으면 자신의 유해를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참 로맨틱한 유언인 것 같은데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어쩌면 톨스토이가 꿈꾸던 이상적인 사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쉐드린의 발레 <안나 카레니나> 이외에도 차이콥스키의 <햄릿> 서곡, 교향곡 <만프레드>, 교향곡 6번 <비창> 등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차이콥스키의 곡들을 사용해 만든 발레 <안나 카레니나>도 있다.

이 발레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첫 번째 버전은 프로콥스키(Андрей Проковский, 1939-2009)가 안무한 3막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79년 10월 25일 호주에서 초연을 하고 1993년 3월 27일이 되어서야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버전은 보리스 에이프만(Борис Эйфман, 1946- )이 안무한 2막으로 되어 있다.

에이프만의 <안나 카레니나>는 2005년 3월 31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했으며 2006년엔 비엔나 오페라 극장 무대에 올랐고 2009년엔 서울에서도 볼 수 있었다.

톨스토이의 안나는 톨스토이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영감을 주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줄 것인데 어떤 모습의 안나와 어떤 음악이 사용될지 생각만 해도 설레이며 기대가 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의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한 문장의 단순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 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뿐만이 아니라 독자 모두도 각자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모두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당시 작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과 시대 상황을 잘 보여 준다. 그래서 동시대 독자들은 그 작품을 통해 공감하며 읽을 수 있고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른 후 후세의 독자들이 그 작품을 읽으면 우리가 살지 않았기에 알지 못 한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준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짧은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대한 상상과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알려준다.

 

만약 내가 안나였다면, 

만약 내가 브론스키였다면…

만약 내가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다면… …

 

오늘도 난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의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눈 속을 달리는 기차도 함께…… 

아마도 그 기차 안에는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사랑과 삶, 희망이 들어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 줄거리 요약 (317 단어) &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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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2. 각 장 줄거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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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는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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