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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푸치니 1858-1924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줄거리 & 등장인물

by wj_s 2021.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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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토스카 Tosca  3막

자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이탈리아 작곡가 

 

✔️원작 : 빅토리앙 사르두 Victorien Sardou, 1831-1908 의 비극 <라 토스카>

✔️대본 : 주세페 자코사 & 루이지 일리카  Giuseppe Giacosa & Luigi Illica

✔️작곡 : 1898-1899년 

✔️초연 : 1900년 1월 14일 로마 코스탄치 극장 Teatro Costanzi, 현 Teatro dell`Opera di Roma

                            3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토스카니니 지휘

                            5월 제노바, 엔리코 카루소

                1900년 7월 런던 초연

                1901년 뉴욕 초연

 

 

경시총감인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카바라도시라는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를 좋아한다. 

카바라도시는 친구가 가담한 정치적 사건 때문에 스카르피아에게 체포 당한다. 

파렴치한 스카르피아는 토스카를 속이고 카바라도시를 처형할 때 공포탄을 쏘아 살려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실탄을 쏘아 그를 처형시킨다.

토스카는 스카르피아를 죽이고 카바라도시와 함께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좋아하지만 카바라도시가 진짜로 처형당해 죽는 것을 보고 절망하여 성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등장인물

플로리아 토스카 유명한 가수 소프라노
마리오 카바라도시 화가, 토스카의 애인 테너
스카르피아 남작 로마 경찰의 수뇌 바리톤
체사레 안젤로티 정치범, 과거 로마 공화국의 영사 베이스
스폴레타 경찰, 스카르피아의 부하 테너
성당지기 성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의 성당지기 베이스

 

작곡 배경

오페라의 원작인 사르두의 희곡 <라 토스카>는 5막짜리 비극으로 당시 유명 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 Sara Bernard, 1844-1923을 위해 쓴 작품이다. 푸치니는 이 연극을 1890년 밀라노에서 관람했고 큰 인상을 받아 오페라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대본 작가 루이지 일리카에게 그의 생각을 전했지만 <라 보엠>을 작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의치 않아 뒤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라 보엠> 완성 후 푸치니는 자코사와 일리카에게 대본을 맡겼고 두 대본가는 5막의 비극을 3막으로 줄였다. 원작에는 프랑스혁명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특징이 있지만 이것은 의식적으로 배제시켰다. 

 

프랑스 희극의 황제라 칭송받았던 사르두는 사라 베르나르드를 위해 특별히 <토스카>를 썼다. 사라 베르나르드는 <토스카>의 여주인공인 플로리아 토스카를 통해 큰 성공을 얻었고 사르두에 따르면 3000번 정도 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극 초연 20년 후 사르두가 말하길 이 숫자는 조금 부풀려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유명한 연극이었기 때문에 <토스카>는 푸치니 뿐만이 아닌 베르디, 프란체티 Alberto Franchetti 등 많은 작곡가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소재였다. 오페라 대본으로 쓸 수 있는 권한을 첫 번째로 받은 것은 프란체티였다. 리코르디의 약간의 농간을 통해 이 권한은 푸치니에게 갔고 이렇게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가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너무 드라마틱해서 오페라 대본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페라 초연을 본 평론가들이 지적한 점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마스카니도 위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 중 한 명으로 “난 나쁜 대본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푸치니는 너무 좋은 대본의 희생양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평론가들의 말이 맞든 안 맞든 오페라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르두의 연극은 ‘죽었다’고 표현될 정도로 사라졌지만 푸치니의 오페라는 초연을 한 지 100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꾸준히 많은 극장의 무대에서 열광하는 작품이 되었고 지금도 많은 소프라노들이 계속 감옥 성벽에서 뛰어내리며 마지막 아리아를 부르고 있다. 

 

푸치니는 사르두의 드라마적 가치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극의 빠른 발전 속도와 대단한 표현력이 바로 그 가치였다. 그래서 일리카가 카바라도시의 마지막 작별을 길게 빼고 싶다고 했을 때 엄청난 반대를 했고 대신 표현력이 풍부하고 격한 감정을 가진 짧은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Е lucevan le stelle»’을 작곡했다. 또한 카바라도시 고문 장면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4중주를 과감히 파괴하여 무대 뒤에서 카바라도시가 고문을 당하는 것을 무대 위에서 토스카, 스카르피아, 그리고 스폴레티가 고문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재밌는 사실중 하나가 푸치니는 그 유명한 아리아인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 vissi d’amore»’를 싫어했다. 극 전체의 흐름을 깬다는 이유에서 이 아리아를 싫어했는데 체코 출신 소프라노 마리아 예리차 Maria Jeritza가 리허설에서 우연히 첫 음이 시작하기 전 누워있다 일어나서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하는 건 좋군. 이렇게 하면 아리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군.’이라고 해서 이후 마리아는 계속 이런 식으로 아리아를 불렀다고 한다. 

푸치니는 늘 극을 먼저 생각했다. 그렇다고 음악을 소홀이 한 것은 아니다. 하루는 테너가 펑크가 나서 카바라도시를 못 부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리코르디는 젊은 테너 한 명을 그에게 보냈는데 그때만 해도 아무도 젊은 테너의 진가를 몰랐다. 푸치니는 그 젊은 테너가 부르는 걸 한 번 듣고 “누가 당신을 나에게 보냈나요? 하나님인가요?”라고 하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그 테너는 엔리코 카루소였다.  

 

 

 

배경이 된 역사적 사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여러 개의 독립적인 도시와 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중심엔 교황 권할 구역이 있었다. 1796년 나폴레옹은 이탈리아를 침공했고 1798년 로마에 새로운 공화국을 세웠다. 이 공화국은 7명의 영사가 통치하였고 그 중 한 명이 리베로 안젤루치였다. 리베로 안젤루치가 오페라에서 카바라도시의 친구로 나오는 체사레 안젤로티의 모델이다. 1799년 공화국을 지키던 프랑스군은 나폴리 군대가 점령하던 로마를 떠났다. 

1800년 5월, 나폴레옹은  다시 군대를 이탈리아로 보냈고 6월 14일 마렝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군과 만나게 된다. 오스트리아 군의 총사령관인 멜라스는 자신의 승리를 당연시하여 로마로 전령을 보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저녁에 지원군이 도착하여 전투에서 이길  있었다. 그래서 멜라스는 두번째 전령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전투  나폴리 군대는 로마를 떠날 수 밖에 없었고 프랑스는 14년 동안  도시를 손에 넣을  있었다. 

 

 

줄거리

배경 & 장소 : 1800년 6월, 로마

*사르두 희곡에는 더 정확한 날짜가 적혀있다. - 1800년 6월 17-18일 오전, 오후, 아침 일찍

 

1막

성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

안젤로티는 공화당원인데 감옥에서 탈출해 로마의 한 교회인 성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에 몸을 숨긴다. 그는 아타반티 집안의 예배당에 숨어 있는데 예배당 열쇠는 그의 여동생인 아타반니 후작부인이 마돈나 동상 아래 그를 위해 숨겨 놓은 것이다. 탈주범을 보지 못하고 성당지기가 성당에서 그림을 그리는 카바라도시를 위해 음식을 가지고 성당으로 들어온다. 그 뒤를 이어 카바라도시도 성당 안으로 들어온다. 그가 그리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그림은 반 정도만 완성된 상태다. 그림을 본 성당지기는 모델이 요즘 성당에 기도하러 자주 오는 여인과 닮았다고 하자 카바라도시는 인정한다. 그는 토스카와 성인의 모습을 비교한다. 성당지기가 화를 내며 그곳을 떠나자 성당 안이 비어있다고 생각한 안젤로티가 나온다. 그곳에서 친구인 카바라도시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지만 토스카가 문을 열어달라는 소리를 듣고 안젤로티는 다시 몸을 숨긴다. 토스카는 카바라도시가 그린 막달라 마리아가 아타반니 가문의 딸을 모델로 한 거냐며 질투를 한다. 카바라도시는 토스카를 달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카바라도시는 안젤로티를 자신의 별장에 숨기기로 결정하고 둘을 떠난다. 

 

이때, 나폴레옹이 패배했다는 소식이 로마에 전달되고 교회는 엄숙한 예배를 준비한다. 토스카를 짝사랑하는 경찰서장 스카르피아가 나타난다. 그는 경관인 스폴레타와 함께 안젤로티가 이곳에 숨어있다는 증거를 찾아낸다. 증거물 중 하나인 부채는 아타반티 가의 문장이 있는 것으로 그는 이것을 사용해 토스카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예배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성당으로 온다. 나폴레옹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테 데움’이 울려 퍼지고 스카르피아는 성당에 남아 있는다. 그는 자신의 연적인 카바라도시를 없애기 위해 토스카의 질투심을 사용하면 되겠다는 교활한 악마의 계획을 세운다. 만약 그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카바라도시는 단두대에 올라갈 것이고 토스카는 그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막

파르네세 궁전

같은 날 저녁, 프랑스군을 이긴 것에 대한 승리의 축하가 파르네세 궁전에서 거행되고 있다. 스카르피아는 궁 안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저녁을 먹는다. 그는 토스카에게 전해주라고 편지를 샤르도네에게 건넨다. 스폴레타는 안젤로티는 놓쳤지만 카바라도시를 체포해왔다고 한다. 체포된 카바라도시를 심문하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이때 들어온 토스카를 이용해 잔혹하게 고문하는 카바라도시를 보여주고 안젤로티가 숨은 곳을 말하라고 한다. 결국, 카바라도시의 고문 소리를 참을 수 없는 토스카는 안젤로티의 은신처를 알려준다. 토스카가 안젤로티의 은신처를 알려준 것을 알아버린 카바라도시는 그녀를 원망하며 쓰러진다. 

샤르로네가 급하게 들어와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진 것이 아니라 승리했다는 소식을 가져온다. 이 소식을 들은 카바라도시는 기뻐하며 스카르피아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스카르피아는 다음 날 아침 카바라도시를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토스카에게는 카바라도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음흉한 제안을 한다. 

토스카는 얼마면 되니?를 외치지만 스카르피아는 머니는 필요 없고 당신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애정을 고백한다. 역겨운 토스카는 차라리 뛰어내려 죽어버리겠다고 하며 둘은 심한 말다툼을 한다.

스폴레타나 안젤로티의 자살 소식과 카바라도시의 처형이 준비되었다는 말을 하고 토스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먹는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의 이런 모습을 보고 스폴레타에게 카바라도시의 거짓 총살을 집행하라고 한다. 토스카는 자신과 카바라도시가 함께 해외로 도망칠 수 있도록 허가서를 써달라고 하고 스카르피아는 출국 허가서를 써준다. 

스카르피아는 드디어 토스카가 자신의 여자가 된다는 기쁨에 그녀를 안지만 토스카는 숨겨두었던 단검으로 그를 찔러 죽인다. 죽어가는 스카르피아는 도와달라고 소리치지만 결국 숨을 거둔다. 토스카는 스카르피아의 시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죽은 스카르피아의 손에 있는 허가서를 빼앗아 카바라도시에게 간다.

 

3막

성 안젤로 감옥 광장

카바라도시는 처형장으로 끌려온다. 이곳에서 그는 토스카에게 마지막 작별의 편지를 쓴다. 갑자기 토스카가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이 스카르피아를 죽였다고 이야기하며 통행증을 보여주며 처형은 눈가림으로 하는 거짓 총살이라고 말해준다. 토스카와 카바라도시는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밝은 미래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스폴레타가 이끄는 병사들이 나타난다. 카바라도시는 침착하게 그들 앞에 서고 총성이 울려 퍼지고 카바라도시는 바닥에 쓰러진다. 뒤늦게 토스카는 스카르피아가 자신을 속인 것을 깨닫는다. 총살은 거짓이 아니었고 총은 장전되어 있어 카바라도시는 정말로 죽어버린 것이다. 토스카는 카바라도시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져 자신에게 다가오는 군인들 조차 보이지 않는다. 스카르피아를 죽인 범인이 토스카인 것을 알고 스폴레타는 그녀를 잡으러 오지만 토스카는 지붕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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