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군도 Архипелаг ГУЛаг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 , 1918∼2008
<수용소군도>는 문학기록 소설로 257명의 수감자들의 편지와 기억, 이야기와 소설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1958년부터 1968년 사이에 비밀리 쓴 책으로 소련의 탄압에 대한 이야기다. 첫 출판은 1973년 12월 파리에서 있었다.
솔제니친은 자신의 작품을 ‘예술적 조사/연구художественное исследование’라고 했다.
수용소군도Архипелаг ГУЛаг의 러시아어는 군도Архипелаг와 수용소ГУЛаг(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лагерей)인데 수용소는 ‘수용소 중앙 관리’의 약자다.
등장인물
알렉산드르 솔제니쯴(솔제니친) Александр Солженицын
이 책의 작가이자 수용소 수감자
그 외 인물
이 책에 언급된 모든 감시자, 수감자 등 모든 인물이 실존인물들로 작가가 개인적으로 알거나 서면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ПОСВЯЩАЮ
всем, кому не хватило жизни
об этом рассказать.
И да простят они мне,
что я не всё увидел, не
всё вспомнил,
не обо всём догадался.
줄거리
1부 형무소 기업 Часть 1. Тюремная промышленность
1장 체포 Глава 1. Арест
매 시간마다 비행기, 배, 기차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군도로 들어온다.
어떻게 수용소에 오게 되는가. 무엇 때문에 체포되는 것이고, 체포당할 때 느낌은 어떠한가?
그들은 자신의 역할에 따라오는 방법이 다르다. 군도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내무부 전문학교’ 통하고 경비원들은 군입대를 통해, 그리고 죽을 운명을 가진 사람들은 ‘체포학’의 여러 방법을 통해 딱 한 번의 체포로 이곳으로 온다.
전통적인 체포 형태는 어떤 것이고 수색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새벽 체포의 장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체포의 분류, 수색의 지식(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한), 기발한 체포 방법 등 체포에 관한 모든 것을 여러 명의 체포된 자들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왜 그들은 체포를 당할 당시 아무도 액션을 행하지 않는가, 아니, 어떻게 저항할 수 있나! 왜 체포되었다고 안도의 한 숨을 쉴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솔제니친이 체포당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한국어 번역에 '꾸즈네츠키 다리'라고 적혀있는데 이건 그냥' 꾸즈네츠키 모스트'라고 했어도 괜찮을 듯싶다. 고유 지명? 같은 것이니까.
2장 우리 하수도의 역사 Глава 2. История нашей канализации 한국어 번역은 '숙청의 흐름'이라고 되어 있다.
‘하수구에는 맥박이 있었다. 압력은 프로젝트보다 높을 때도 있었고 낮을 때도 있었지만 수용소의 하수구는 빈 적이 없었다. 우리에게서 쥐어짠 피, 땀 그리고 소변은 쉴 새 없이 그곳으로 흘렀다. 이 하수구의 역사는 끊임없이 삼키고 흘러가는 역사다. 물이 범람하는 시기가 물이 마른 시기로 변했다 다시 범람하는 시기로 돌아왔다. 물의 흐름은 클 때도 있고 작을 때도 있었고 게다가 사방팔방에서 시냇물, 작은 물줄기, 더 작은 줄기, 방울방울까지도 홈을 따라 들어왔다.’ - 수용소군도
수용소군도에서 솔제니찐은 소련(СССР)의 감옥 시스템을 ‘하수도(하수구/канализация)라고 명명했다. 왜 이런 단어를 붙였을까? 체포된 사람들은, ‘똥говно(shit)’이라 불렀고 체포를 통해 청소, 정화를 한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솔제니찐은 ‘하수도’라고 표현한 것이다.
가장 큰 체포의 흐름은 3번 있었다. 강탈의 시기, 전쟁 후, 그리고 1937년. 하지만 체포 연습은 이것들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스탈린 시대의 감옥 ‘하수구’는 3번 한계에 달했다. 1929-30년, 1937-38년, 1944-46년 대량 체포가 이루어졌었다. 이것은 ‘숙청’이란 이야기를 언급할 때 나오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하수구’를 사용하고 있었고 한다.
우선 1917년 레닌이 ‘모든 해충으로부터 러시아 땅을 청소하자’라는 이념의 선언했다. 10월 혁명 후 바로 레닌이 슬로건으로 내건 것은 ‘해충박멸’이 있었다. ‘해충’의 정의는 무엇인가?
전 러시아 반혁명 태업 단속 비상위원회 (ВЧК(Всероссийская чрезвы-чайная комиссия по борьбе с контрреволюцией и саботажем))의 특별함은 무엇인가?무엇인가? 그래서 이것을 토대로 사회혁명당원эсер, 사회민주주의자социал-демократ, 지식인интеллигенция들의 체포와 처형이 되었는데 재판이나 조사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1919년 농산물 징발Продразвёрстка(сокращение от словосочетания продово́льственная развёрстка) 때는 농촌 여기저기에서 반발이 심했고 이로 인해 2년 동안 농민들의 체포가 끊이지 않았다. 1922년부터는 교회가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반혁명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대주교부터 집사 등 많은 교인들이 체포되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민란이 일어났다. 1920년대는 러시아 백군과 그들의 가족 색출과 체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또한 전 관직자들도 여기에 포함되었는데 이들이 농민들을 갈취했다는 명목이었다.
사회주의자,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 등 여러 종류의 흐름을 통해 들어온 체포자들이 있다.
탐보프에 있는 압착된 수용소 등 1921년에 강화된 제압이 있었다. 국민 탄압이 있었기에 학생들의 체포가 상당했고 군인들의 정신개조, 그들의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가 쓰여있다.
1937년 당 지도부, 군 지휘부, 소련 내무인민위원회НКВД Народный Комиссариат Внутренних Дел 최고위 간부들에게 불똥이 떨어졌고 강한 타격이 가해졌다. 유죄를 만드는 만능적인 척도를 위해 14개의 조항이 들어있는 제58조를 만들어 누구든 체포할 수 있게 되었다.
대조국 전쟁 시기(1941-1945, 제2차 세계 대전)에는 패닉을 조직하는 자, 소련에 거주했던 독일인, 포로들과 점령지에 있었던 사람들로 인해 체포자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전쟁 후에는 인민의 원수들의 아이들도 체포했지만 수용소에서 10년동안 살아서 자신의 형을 꽉 채우고 세상으로 나갔던 사람들까지도 다시 체포되었다.
한 마디로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꽉 찬 수용소였다.
*러시아 백색 운동(Белое движение) 하얀 군대(Белая Армия) 백위대(Белая Гвардия )
3장 조사 Глава 3. Следствие 한국어 번역은 '신문'이라 되어 있다.
제58조를 통한 조사는 언제나 딱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을 돌이킬 수 없게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의 의지를 꺾어버리고 ‘완전한 군도 토박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 가장 잔인하고 정밀한 고문을 사용했다. 어찌 보면 이런 고문은 계몽된 20세기보다 중세 시대의 종교재판에 더 어울렸을 것이다.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시대에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표트르 대제 시대에는 벌써 야만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비론 섭정 때만 해도 10-20명 에게만 적용되었던 것인데 *에카테리나 2세 시대가 되자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누가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음성 영화와 라디오가 나온 시대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을까? 그것도 한 사람의 악당이 음침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의 훈련된 인간-동물이 몇 백만명의 보호도 받지 못 하는 희생자에게 하는 짓이라는 것을!! -수용소군도
누가 20세기에도 고문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을 했을까?
누가 20세기에서 고문을 기다렸을까? 생각해낼 필요조차 없다.
조사는 관을 통해 빼내는 것이다. 초창기 소련시절, 부풀려진 ‘일’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돌아온 사람은 없다. 밤에 일어나는 조사, 더운 감방, 고문은 언제나 있었다.
고문을 받아야 되는 죄수들의 카테고리가 있었고 증거보다 직접 자신이 실토하게 만들었다.
여러 형태의 고문이 자행되었고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두가지를 합쳐 만든 것까지 고문의 형태는 다양하고 잔인했다.
솔제니친의 조사는 루반캬의 원통에 앉혀서 이루어졌다.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시대 - 1629-1676, 로마노소프 왕가, 1645년부터 1676년까지 재위
*표트르 대제 - 1672-1725, 로마노소프 왕가, 1682-1721년은 차르이며 대공후였고 1721년부터 1725년까지는 러시아 제국의 황제로 재위
*비론 섭정시대 (안나 이바노브나 여제(1693-1740, 로마노소프 왕가)의 재위기간이 1730년에서 1740년까지였는데 이 기간동안 쿠를랸디야(지금의 라트비아 서부 지역, 게르만계 공국) 비론 공작(Эрнст Иоганн Бирон, 1690-1772)에게 정사를 맡겼다.
*에카테리나 여제 - 1729-1796, 로마노소프 왕가, 독일 출신으로 표트르 3세의 부인이었으나 무능한 남편을 밀어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이 여제가 되었다. 재위기간은 1762-1796
4장 파란 색줄 Глава 4. Голубые канты 한국어 번역은 '푸른 제모'로 되어 있다.
푸른 곳의 조사관(수사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지시된 사항을 정확하게 시행하고 고통에는 무자비해야 되는 것’이었다. 파란 색줄blue kant이 가장 좋아하는 관용구는 ‘사람이 있으면 모든 일은 만들면 된다!’였다. 하지만 건들 수 없는 조직이어도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였고, 그곳의 관리자들 조차도 수천 명의 죄수들처럼 슬프게 자신들의 삶을 마감했다.
*Кант – (의복의) 색줄, 테두리, 선두름, 가장자리 장식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5장 첫 감방, 첫사랑 Глава 5. Первая камера – первая любовь
체포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들어간 첫 번째 감방이 특별한 자리를 잡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운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인생을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분리하는 큰 힘을 갖고 있다.
6장 그 봄 Глава 6. Та весна 한국어 번역은 ‘그해 봄’으로 되어 있다.
1945년은 러시아 포로의 해가 되었다. 그들은 국가가 3번씩이나 배신한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배신은 전쟁에서 패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했던 국가 지도부가 있었던 전쟁터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로 나라가 그들은 배반한 것은 포로로 죽도록 방관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배신은 전쟁 후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조국은 포로들을 국경에서부터 목에 줄을 감아 자신의 품으로 유인했다. 이 정도의 비열함은 그 어느 시대의 역사에도 없었다. 조국이 자신의 병사들을 배신하였지만 반대로 그들이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라 선포했다.
7장 엔진 룸에서 Глава 7. В машинном отделении 한국어 번역은 ‘기관실에서’로 되어 있다.
OCO는 특별한 회의로, 가장 편한 커틀렛을 만드는 기계로 밝혀졌다. 이것은 재판의 판결이 없이 자유롭게 인간의 재산, 직위(칭호)와 표창, 그리고 거주등록권리까지 빼앗았다. 인간이 아예 지구상에 존재 하지 않은 것처럼 사라졌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 어디에도 불만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OCO는 내무부, 스탈린과 사탄에게만 복종했다.
*러시아어는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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