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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무소르그스키 1839-1881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작품 설명

by wj_s 2020.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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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Картинки с выставки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Модест Петрович Мусоргский (1839-1881) 러시아 작곡가, 국민악파 5인조

 

✔️작곡 : 1874년

 

“잘 지냈어?”

“… …”

“오늘은 뭐했어? 하루 종일 안 심심했어?”

“… …”

“난 오늘도 바빴어. 예전엔 이렇게 바쁘게 하루를 보내면 힘들어서 화가 났는데 지금은 할 일이 많은 게 좋은 것 같아.”

“… …”

 

오늘도 난 그에게 말을 걸어본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건 묵묵무답.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듣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데 답을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내 곁에 있지 않다. 

아무리 보고 싶다고 매초, 매분 그를 생각해도 절대 볼 수 없다. 

그는 이제 내 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듯싶다.

나와 맞지 않아서 보지 않게 되는 사람들, 혹은 친구들이 늘어가지만 때로는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날 때도 생기게 된다.

어렸을 때만 해도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도 너무 어렸기에 뭔가 딴 세상의 이야기이고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갈수록 한 사람의 부재가 마음에 큰 구멍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특히 그 사람이 절친한 친구였다면 더욱더 그리움의 무게가 크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Модест П. Мусоргский, 1839-1881)는 34세에 절친이었던 빅토르 *가르트만(하르트만)(Виктор А. Гартман,1834-1873)을 잃었다. 

내성적이고 삶이 그다지 녹녹지 않았던 그에게 있어 굉장히 쇼킹한 일이었을 것이다.

1865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충격으로 신경쇠약과 심한 음주벽에 시달렸던 그인데 8년 후인 1873년 가르트만이 동맥류 파열로 급사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어머니만큼 가깝지는 않고 혈육은 아니었기에 어머니의 죽음보다는 조금 여유?롭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충격적 죽음이 있었기에 처음 겪는 일이 아니어서 조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가르트만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화가였는데 무소르그스키만 그와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다. 동시대 최고의 음악, 예술 평론가였던 블라디미르 스타소프(Владимир В. Стасов, 1824-1906)와도 굉장히 친한 사이였다. 

그랬기에 스타소프도 무소르그스키만큼 절친을 잃은 충격이 컸고 무소르그스키와 스타소프는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친구를 추모해주었다.

 

스타소프(Владимир В. Стасов, 1824-1906)는 1874년, 가르트만이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난 후 그의 유작을 모아 추모 전람회를 개최했다. 

무소르그스키가 속해 있던 ‘국민악파 5인조(Могучая Пятёрка)’ 와도 친분이 두터워서 무소르그스키와도 친했던 스타소프는 가르트만을 추모하는 이 전람회에 무소르그스키를 초대했다. 아무래도 무소르그스키도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이 크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이렇게나마 조금이라도 친구를 가슴에 아름답게 묻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전시회에서 본 무소르그스키는 그림 중 자신에게 영감을 준 10개의 작품을 토대로 가르트만을 생각하며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피아노를 위한 대작을 작곡하였고 이 작품을 작곡할 수 있었던 계기인 추모 전람회를 개최해준 친구 스타소프에게 자신의 작품을 헌정했다. 

 

<전람회의 그림>은 10개의 소품으로 구성된 피아노 곡이다.

이 곡은 작곡가 자신이 가르트만의 추모 전시회를 다니며 그림을 보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어 10개의 소품은 무소르그스키가 영감을 받은 가르트만의 작품 10개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특이한 주제의 <전람회의 그림>은 ‘산책(Прогулка, Promenade)’ 이라는 곡으로 30분이 넘는 대작을 시작한다. 

‘산책’은 시작을 알리는 곡이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다른 곡들의 악장사이에 나오기도 하는데 이렇게 이 곡이 중간 중간 흐름으로 인해 각 악장 간의 유기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러시아어에서 ‘산책’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곡에서 사용되는 ‘산책’은 '전람회장을 거니는 행동' 을 이야기한다. 

작곡가 자신이 가르트만 추모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기 위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곡이다. 

이렇게 무소르그스키는 전시회를 거닐면서 그림을 한 장씩 보기 시작한다.

 

 

    Promenade 산책

I. Gnomus 난쟁이

    Promenade 산책

II. II vecchio castello 고성

    Promenade 산책

III. Tuileries(Dispute d’enfants jeux) 튈르리의 정원

IV. Bydlo 비들로-폴란드의 소달구지

    Promenade 산책

V. Ballet des petits poussins dans leurs coques 껍질을 덜 깬 병아리의 춤

VI. Samuell Goldenberg und Schmuÿle 사무엘 골덴버르그와 슈뮤일레(부자 유태인과 가난뱅이 유태인)

    Promenade 산책

VII. Limoges. Le Marché(La Grande Nouvelle) 리모쥬의 시장. 말다툼하는 여인들

VIII. Catacombae(Sepulcrum romanum) 카타콤브(로마시대의 지하묘지)

      Cum mortuis lingua mortua 죽음의 말로 죽은 자에게 하는 대화

IX. La Cabane sur des pattes de poule(Baba-Yaga) 바바-야가의 오두막집

X. La Grande Porte de Kiev 키예프의 거대한 대문

 

 

‘산책’ 후 첫 곡은 난쟁이(Гном, Gnomus)’이다. 

이 곡은 가르트만의 그림을 보고 작곡된 곡이라고 하는데 그의 그림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인형이 그려져있었다고 한다. 그 인형은 절름발이 난쟁이 모양의 호두까기 인형으로 음악을 들으면 절름발이 형상의 한쪽으로 뒤뚱거리는 인형을 모습이 보이는 듯싶다. 아쉽게도 이 그림은 현재 보존되지 않아 이렇게 설명으로만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작곡가는 다음 그림까지 ‘산책’을 한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번째 그림을 보기 시작한다. 

 

두 번째 곡은 고성(Старый замок, Il Vecchio castello)’이다.

가르트만은 앞서 이야기했듯 건축가이기도 했기에 유럽 곳곳을 다니며 여러 건물의 건축양식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탈리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 그린 그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성’이다.

스타소프의 기억에 의하면 ‘고성’은 중세 길거리 악사가 류트를 연주하고 있는 그림이라고 하는데 길거리 악사를 그곳에 그린 이유는 고성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서였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무소르그스키는 이 곡에 ‘굉장히 노래 부르듯, 애수에 잠겨’ 라고 표시하였고 이 멜로디를 들으면 정말 향수에 잠긴 듯한 느낌이 든다.  

중간에 밝은 멜로디가 살짝 나오기도 하지만 다시 애수에 찬 멜로디로 돌아오는데 다시 돌아온 슬픈 멜로디는 ‘안녕(bye-bye)’을 고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슬픔 마음과 함께 작곡가는 ‘산책’을 하며 3번째 그림을 보기 위해 걷는다.

다행히 3번째 그림을 본 작곡가는 기분이 한층 좋아진 듯싶다. 

 

3번째 곡은 ‘튈르리의 정원(Тюильрийский сад. Ссора детей после игры, Tuileries. Dispute d’enfants après jeux)’ 인데 스타소프의 회상에 의하면 가르트만의 그림은 파리의 튈르리 공원의 산책길에 많은 아이들과 보모들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 곡은 앞의 곡인 ‘고성’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의 곡으로 부제에도 잘 나타나듯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싸우는 느낌이 가득 차있는 곡이다. 

무소르그스키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무소르그스키는 평생 러시아를 떠나본 적도 없고 해외를 나간 적이 없기 때문에 이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파리의 산책길을 떠올리며 작곡한 것이 아니라 페테르부르크의 여름 공원을 보며 상상해낸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어쩌면 가르트만이 파리를 다녀와 무소르그스키에게 그곳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작곡하는데 힘을 보탰을 수도 있다. 

 

그림과 그림 사이에 계속 ‘산책’을 하던 작곡가는 세 번째 그림과 네 번째 그림 사이에 산책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세번째와 네번째 그림은 연달아 걸려있었나 보다.

4번째 곡은 어마 무시하게 무거운 ‘폴란드의 소달구지(Быдло, Bydlo)’다.

엄청나게 큰 바퀴를 가지고 있는 달구지를 표현한 곡인데 피아노 곡에는 앞 작품과의 대비를 위해 ff(포르테시모)로 시작을 하는데 작곡가의 표현을 하자면 머리를 망치로 ‘퉁’ 치는 듯한 느낌의 ff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힘겹게 달구지는 자신의 길을 가게 되고 그 힘겨움, 달구지의 크기, 이 모든 것이 ‘거대하다’ 라는 표현 하나만 필요한 듯싶다. 덜컹거리며 절대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듯하게 들리던 달구지는 묵묵히 조금씩 지나며 결국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또 작곡가의 ‘산책’이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산책과는 사뭇 다른 산책이다.

처음으로 들리는 마이너(minor, 단조)의 ‘산책’ 이기 때문이다.

이 산책에는 작곡가의 슬픔과 생각에 잠긴 모습이 담겨있는데 아마도 친구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친구가 더 그리워진 모양이다. 

 

슬퍼진 작곡가에게 다섯 번째 그림은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5번째 곡을 그렇게 듣기 때문이다. 

5번째 곡은 ‘껍질을 덜 깬 병아리의 춤(Балет невылупившихся птеньцов, Ballet des petits poussins dans leurs coques)’이다.

가르트만은 1871년 볼쇼이 극장(Большой Театр)에서 초연한 율리 게르베르(Гербер, Юлий)의 발레 <트릴비(Трильби)> (마리우스 프티파(Мариус Петипа) 안무)의 의상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그는 17장의 의상 스케치를 했는데 아쉽게도 그중 4장 만이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5번째 곡은 아마도 이 의상 스케치 중 하나를 보고 작곡된 곡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앞 작품이었던 ‘달구지’가 주는 어둡고 무거운 느낌과는 상반되는 가볍고 즐거운 스케르치노(Скерцино, Scherzzino)인데 귀여운 병아리들이 짹짹거리면서 마구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랑스런 곡이다.

 

6번째 곡은 ‘사무엘 골덴버그와 슈뮤일레(Самуэль Гольденберг и Шмуйле)’다.

가르트만은 1868년 폴란드에서 유태인을 모델로 2점의 그림(«Еврей в меховой шапке. Сандомир» и «Сандомирский [еврей]»)을 그렸는데 이 그림들을 무소르그스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무소르그스키는 이 선물이 너무나 고마웠던 것 같다.

스타소프가 회상하길 무소르그스키는 이 2 작품에 대해 ‘대단한 작품’이라고 감탄했고 그래서 많은 영감을 준 이 작품이 6번째 곡인 ‘사무엘 골덴버그와 슈무일레’라는 곡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스타소프는 이 곡을 듣고 ‘두 명의 유태인, 부자와 가난뱅이’ 이라는 부제를 붙여주었고 그 후 러시아에서는 이 곡을 스타소프가 지어준 부제로 부른다. 

그래서 모스크바 유학시절, 학교에서 이 곡을 공부하던 피아니스트인 동생이 칠 때도 이 곡은 ‘사무엘 골덴버그와 슈무일레’ 라고 부르기보단 ‘두 명의 유태인, 부자와 가난뱅이’ 으로 불렀다. 

이 곡을 시작하는 무거운 선율은 부자 유태인을 묘사하는 것이고 그 뒤 높은 음의 약간은 경박스러운 멜로디는 가난한 유태인을 묘사한다. 

집시풍, 혹은 헝가리 풍의 마이너(minor, 단조) 스케일이 이 곡의 동양적 풍미를 가미시킨다.

두 유태인을 감상한 작곡가는 또 ‘산책’을 한다.

이 ‘산책’은 중간중간에 있었던 다른 산책과는 사뭇 다르다. 

중간에 있었던 다른 산책들은 곡과 곡 사이를 말 그대로 산책하는 분위기여서 짧게 스쳐 지나갔는데 이번 산책은 <전람회의 그림>을 시작한 첫 곡인 ‘산책’을 거의 다 재현하면서 <전람회의 그림>의 절반을 종료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산책’은 아주 중요한 산책이다.

이제 전시회의 반절 만이 남은 것이다.

그리고 <전람회의 그림>중 마지막으로 즐거운 곡이 시작된다.

 

7번째 곡은 ‘리모쥬의 시장. 큰 뉴스(Лимож. Рынок. Большая новость, Limoges. Le marché. La grande nouvelle)’이다.

가르트만은 리모쥬에서 살면서 그곳에 있는 성당 건축물을 공부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리모쥬에 대한 그림은 그리지 않았는지 전시회 카탈로그를 보면 리모쥬에 대한 그림은 없다. 

어쩌면 이 곡은 가르트만이 해외에 가보지 못한 친구인 무소르그스키를 위해 자신이 살았던 곳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던 중 작곡가가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이야기를 묘사한 곡이 아닐까 싶다.

무소르그스키는 이 작품을 위해 시장에서 들을 수 있는 뒷담화를 프랑스어로 썼고 작곡을 다 한 뒤 지웠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잘 알지 못한 무소르그스키는 프랑스어로 쓴 제목조차도 틀리게 썼다고 한다. 그러니 어쩌면 제대로 된 프랑스어로 뒷담화를 쓰지 못 했을 수도 있다. 그냥 프랑스 여인들이 시장에서 뒷담화를 한다면 이런 식의 억양을 사용했겠구나… 라는 상상을 위해 그런 글들을 적어 사용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부제에서도 느낄 수 있듯 이 곡은 정신없고 시끄러운? 곡이다. 이런 수다스러운 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여덟 번째 그림을 볼, 아니 들을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8번째 곡은 ‘카타콤브(로마시대의 지하묘지)(Катакомбы. Римская гробница, Catacombae. Sepulcrum romanum)다.

가르트만은 그의 그림에 파리에 있는 로마식 지하무덤을 그렸다. 그곳엔 가르트만 자신과 친구인 케넬, 그리고 램프를 들고 그들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의 7번째 곡인 리모쥬의 시장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모습이다.

시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고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고 지하묘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음산한 곳이기 때문에 작곡가가 왜 이런 순서로 곡을 나열했을까… 라는 오묘한 기분으로 이 곡을 집중해서 듣게 된다. 

하지만 그 다음 곡을 들으면 왠지 작곡가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죽은 언어로 죽은 자와 하는 대화(С мёртвыми на мёртвом языке, Cum mortuis in lingua mortua)’다.

이 곡에선 마이너 멜로디의 ‘산책’이 들리는데 이것은 슬픔에 잠긴 작곡가를 묵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죽은 언어로 말하는 죽은 사람과 함께’ 라는 부제가 표현하는 것은 무소르그스키가 죽은 친구인 가르트만의 영혼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가슴이 사무치게 그리운 친구의 존재를 그의 그림에서 발견하고 그 그림들을 보면서 더욱더 친구를 그리워하고 이런 우울한 감정이 무소르그스키를 짓누르며 미치도록 그의 곁을 떠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가르트만이 살아있었다면… 또 어딘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면…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라 면… 혹은 무소르그스키가 새로운 곡을 작곡하고 있다면… 아직도 생계는 힘들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는 무소르그스키의 삶을, 인생을 친구와 함께 나누며 삶이 지니고 있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떨쳐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어둡고 침침한 페테르부르크의 거리들을 거닐고 술을 한 잔씩 기울이며 친구들이 완성한 새 작품의 초연을 보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 비판 속에서 우정을 다시 한번 느끼며 추운 겨울을 그렇게 행복하게, 따뜻하게 보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렇기에 더욱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침묵 속에서 그 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둘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나눈 대화가 무소르그스키에게 힘을 주었고 그것은 이 무거운 곡이 단조 분위기에서 장조로 점차 바뀌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국 무소르그스키는 어두운 죽음 속에서 가르트만을 따뜻한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던 것이고 그것을 위해 마지막 두 곡을 러시아 테마로 선택했다. 

 

9번째 곡은 ‘바바-야가의 오두막집(Избушка на курьих ножках (Баба-Яга), La Cabane sur des pattes de poule(Baba-Yaga)’이다.

가르트만의 그림은 닭발 위에 있는 오두막집의 형상을 한 브론즈로 된 시계 스케치였다.

이런 단순한 스케치를 보고 무소르그스키는 위력 있는 바바-야가(Бабa-Ягa)의 형상을 생각하게 되었다. 

바바-야가는 러시아 민담에 나오는 마녀이다.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는 할머니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고 닭발 위에 있는 오두막집에 산다. 이 오두막집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움직이는 집처럼 혼자 생각하고 움직일 수 도 있는 신기한 집이다. 

늘 악역으로 나오는 바바-야가는 악역이기에 어린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고 뭔가 굉장히 광폭스럽고 사악하며 교활한, 엄청난 힘을 가진 것 같은 캐릭터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이런 공포스럽고 힘이 넘치는, 어렸을 적부터 즐겨 읽던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바바-야가를 피아노의 선율로 표현했다. 

바바-야가는 '슝- 슝-' 날아다니고 '핑- 핑-' 마법을 정신없이 건다. 

듣는 이로 하여금 혼을 쏙 빼놓으면 마지막 곡이 쉼표도 없이 시작된다.

 

그렇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곡을 듣게 된다.

40분에 육박하는 대작 <전람회의 그림>의 마지막 곡인 10번째 곡은 ‘키예프의 거대한 대문(Богатырские ворота. В стольном городе во Киеве, La Grande Porte de Kiev)’이다.

1866년 4월 4(16)일 알렉산드르 2세(Алексадр II, 1818-1881)는 죽었다 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이 날은 알렉산드르 2세를 죽이기 위해 공식적인 첫 암살 시도가 있었는데 미수로 그쳤기에 알렉산드르 2세는 자신의 생존 기념을 위해 키예프시의 대문 건축 프로젝트를 공모한다.

이 공모를 위해 가르트만은 키예프의 대문을 고대 루시 시대의 수도에나 있었을 듯한 고풍스러운 스타일로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공모전은 무산되었고 프로젝트마저 없는 일이 되었다고 한다.

대신 이 스케치는 무소르그스키에게 <전람회의 그림>의 마지막 곡을 작곡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소르그스키는 자신의 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러시아 민요를 사용하고 화려한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성당에서 들을 수 있는 종소리 묘사를 했고 중간에 ‘산책’을 넣어서 작곡가 자신이 거대한 키예프의 대문을 통과하는 행렬 사이에서 민중과 함께 이 문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장중하고 멋있게 <전람회의 그림>이 끝을 맺는다.

 

내가 보기에 <전람회의 그림>은 단순히 무소르그스키가 친구인 가르트만의 그림을 보며 그를 기리기 위해 작곡한 곡은 아닌 듯싶다.

아니, 맞다. 가르트만을 기리기 위해 작곡한 곡은 맞지만 단순히 그의 그림만 보고 영감이 왔기 때문에 그 그림들을 ‘단순하게’ 음악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 것이다.

산책을 하며 작곡가는 가르트만이 생전에 돌아다닌 여러 나라의 모습을 묘사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등 각국에서 생활을 하며 가르트만이 무소르그스키에게 들려준 여러 에피소드들을 사용해 젊었을 적의 가르트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르트만의 죽음, 그리고 죽음으로 인해 침묵의 대화를 나눴어야 하는 그들.

결국 무소르그스키는 자신들의 동심의 세계인 ‘바바-야가’를 가르트만에게 이야기해주었고 둘은 동심의 세계에서 고향인 러시아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Home sweet home’

이것이 무소르그스키가 가르트만에게 하고 싶었던 진심일 수도 있다.

'널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게. 조금만 기다려!… …'

그래서 마지막 곡에 종소리 효과를 넣은 것이다. 무소르그스키나 라흐마니노프 같은 러시아 작곡가에게 ‘종소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남다르니까…

그들에게 있어 종소리는 근본적인, 자신의 뿌리와 같은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러시아인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아니 살아 있다는 ‘LIVE’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소르그스키는 이런 종소리 안에 자신을 넣고 또 결국 모든 결말은 ‘해피엔딩’ 이어야 된다는 밝은 미래를 우리에게, 가르트만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가 내 곁에 없다고 해도 기운을 내야 한다. 난 살아 있으니까…

무소르그스키도 결국 자신이 힘을 내서 열심히 사는 것이 그를 위해서도, 친구인 가르트만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해피엔딩’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보고 싶은 상대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순간부터 더 외롭고 그립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하늘 어디에선가 나와 함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렇게라도 조그만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수 있다.

 

 

 

*한국어 표기로 ‘하르트만’이라고 되어 있지만 러시아어로는 ‘가르트만’ 이다.

외국어 H 를 러시아는 Г(G) 로 표기하기 때문에 러시아어 Г(G)도 번역을 하면 H로 표기하는 듯싶다.

러시아인들 중 독일이나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러시아에 정착을 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성(Last name)을 러시아어식 표기로 했기 때문에 ‘하르트만’, ‘가르트만’ 과 같은 여러 방식의 표기가 생기는 듯싶다. 하지만 외국어가 아닌 이제는 러시아에 자리 잡은 하나의 성이기 때문에 외국어로 표기된 방식으로 읽는 것보다는 러시아어로 표기된 방식 그대로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러시아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 책에는 더 걸맞는다고 생각된다.  

 

 

 

*러시아어는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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