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살리에리 Моцарт и Сальери Mozart and Salieri
알렉산드르 푸쉬킨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1799-1837 시인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푸쉬킨의 ‘4개의 작은 비극’ 중 두 번째 작품으로 1830년에 완성된 희곡으로
모차르트의 죽음에 대한 소문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위대한 예술은 무엇일까?
살리에리에게 있어 위대한 예술은 노력으로 획득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피나는 노력 끝에 장인 기질을 얻을 수 있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작곡을 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음악은 그저 사람의 소리에 불과했다. 그럼 살리에리가 ‘철없고 게으른 방탕아’라고 표현한 모차르트는?
모차르트라고 노력 없이 그런 멋있는 곡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살리에리도 충분히 모차르트가 엄청난 노력의 결과로 자신의 창작물을 내놓는 것이란 걸 알았을 것이다. 거기에 천재성을 겸비했기에 살리에리는 그를 질투하고 경멸하며 그런 천재성을 모차르트에게만 내려준 신을 원망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아무리 장인 정신이 위대한 예술을 만든다고 이야기하는 살리에리도 그저 한계에 부딪힌 평범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위대한 예술은 무엇일까?
푸쉬킨은 단순히 장인적 정신과 천재적 영감의 대비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술성과 인간성을 분리시키지 않고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진정 위대한 예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푸쉬킨은 인간 본연의 모습에 관심이 있었고 인간애를 밑바탕으로 한 예술만이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모습이 아닌 질투가 생기면 ‘예술’이란 본질적인 것이 깨지고 가치가 없어져서 그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생명을 잃는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모차르트의 출연으로 살리에리는 질투가 점점 심해지고 질투를 거쳐 증오에 이르러 결국 극단의 방법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틀린 사람들이었다.
모차르트는 한 번도 심각하게 음악에 대해 토론해 본 적 없고 살리에리의 시각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유치한 것들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은 자유롭고 자연스러웠다. 이 모든 것이 ‘빈둥거리는’ 모차르트가 모든 인류를 감동시키고 그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마저도 그 음악에 푹 빠져 클래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과학적으로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은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행복한 감정에 의해 무럭무럭 자라고 또 공부를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에게 모차르트를 들려주면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된다고 입증되었다.
반면 살리에리는 의식적이고 부자연스런 성격의 소유자다. 끊임없이 예술의 미래를 걱정하고 고뇌에 차있지만 자기모순적 화두에 빠지기만 하고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질투만’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차르트같이 말이 필요 없이 듣기만 해도 위대한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유창한 말로 모드를 설득시켰어야 한다. 뭐, 살리에리는 고상한 언어를 사용하는 언변가였으므로 꽤 성공적으로 모두를 설득시켰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더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무능함을 느꼈을 것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불거리는, 삶을 즐기기만 하는 천재의 작품을 들으며 분노를 인해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면을 묘사한 푸쉬킨은 살리에리의 모순적 모습으로 인한 질투를 제일 큰 테마로 잡고 있다. 본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은 <질투(Завесть, Zavist)>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질투 때문에 고통받는 살리에리의 심리적 현상이다. 그는 자신의 질투를 없애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얻은 건 자신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성립한 예술에 대한 모든 것들이 뿌리째 흔들렸고 질투에 의해 신을 원망하고 결국은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예술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모차르트의 살인 자체도 예술의 가치를 위한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말하게 된다.
푸쉬킨이 작품에서 사용한 질투의 심리학은 다음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게 엄청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로 인해 도스토옙스키는 푸쉬킨의 심리 묘사 기법을 사용해 더욱 멋있는 주인공들을 창조해 내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는 어떤 사이었을까?
이 작품에 써 있는 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 KV.626)>은 극적인 에피소드가 함께 하기 때문에 이렇게 무수히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또 다른 예술적 작품들을 창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지만 푸쉬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1830),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1979),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밀로스 포만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1984)가 사용한 이야기가 실제 사건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원래 <레퀴엠>은 ‘죽은 사람들을 위한 미사곡’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한다. 미사 전에 ‘Requiem asternam dona eis, Domie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처를 주소서)’로 라고 라틴어로 시작되기 때문에 레퀴엠(진혼곡)이라 부른다. 쇼팽도 자신의 장례식에서 이 곡을 연주해달라고 했다.
1791년 7월 어느 저녁, 괴기스런 모습의 누군가가 나타나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의뢰했다. 그는 정해진 날짜에 곡을 완성해달라고 부탁했으며 의뢰인이 누구인가 묻지 말라는 조건을 말했다.
당시 여러 어려움을 겪어 심신이 피폐해져 있는 모차르트는 당장 작곡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당히 큰 작곡료를 주겠다는 말에 작곡을 시작했다.
이것을 의뢰한 사람은 발제그 백작인데 그해 2월 죽은 젊은 아내의 1주기 맞춰 이 작품을 본인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싶어서 의뢰자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약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만들어진 설이라고 판명되었다.
당시 모차르트의 현실은 어떠했냐면, 자신의 건강이 심히 악화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죽음을 위해 이 곡을 꼭 완성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1891년 11월 20일 모차르트는 급격히 건강상태가 나빠졌다. 아마도 엄청나게 괴로웠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는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12월 4일 모차르트는 작곡하다 중단된 제3곡 6부 <눈물겨운 그날이 오면>을 꼭 완결하고 싶어서 자신의 제자 쥐스마이어를 불러 완결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레퀴엠에 대한 마음을 덜었는지 다음날인 5일 오전 0시 55분 눈을 감았다. 36세 밖에 되지 않은 나이었다.
모차르트가 완성한 부분은 레퀴엠의 2/3었고 나머지 부분은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의 악상을 생각해내고 그의 기법을 그대로 사용해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2개월 후 완성하였다. 그 후 이 작품은 발제그 백작 이름으로 발표되었다고 한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 대해 생각했던 것은 무엇일까? 진실은 무엇일까?
그저 악한 눈빛과 자신의 라이벌이라고만 생각을 했을까?
항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했다면 불가피하게 꼭 그 일을 그렇게 해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은 언제나 다른 것이고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오직 그 두 사람만이 정확하게 알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상당히 가깝게 지내며 무수히 많은 음악적 영감을 공유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린 너무 단면만 보며 그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라이벌은 누구일까? 혹시 주변에서 우리를 흠모하거나 우리로 인해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을 한 번 해봐야겠다.
하지만 진정한 라이벌은 지금 내 자신일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시간을 보내든지 내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사고하는지가 가장 큰 적일 것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좋게 보이는 것도 내 생각으로 인해 힘든 일로 변하고 모두가 역경 속에 있다고 생각해도 내 자신이 긍정과 행복으로 돌파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라이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이다.
살리에리처럼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질투를 해봤자 좋은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일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공허해지고 불신만 가득해지면 그 인생은 더욱더 불행과 비통 속에서만 맴돌게 될 것이다.
언제나 정답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저 가끔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러시아어는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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